맨 앞에 뭐가 있는데?

by 고석근

맨 앞에 뭐가 있는데?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 앞에 있는 개가 자기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같이 따라서 짖었던 것이다.


- 이탁오 李卓吾 (1527-1602, 중국 명대의 사상가)



아이들을 보면 다른 아이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인간의 타고난 ‘공감력’이다.


인간은 이 공감의 힘으로 찬란한 문명을 이루었다. 지구가 하나의 촌(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대만의 동화작가 장잉민의 그림책 ‘맨 앞에 뭐가 있는데?’을 재미있게 보았다.


태풍이 지나간 뒤, 동물들이 줄 지어 서서 무언가를 밀고 있다.


“뭘 미는 거야?”


바다거북이가 궁금해서 줄 끝에 있는 흰동가리에게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대체 뭘 밀고 있는지 모르지만 다들 한 줄로 서서 열심히 밀고 있다.


“앞에 뭐가 있는데?” 기다란 줄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한 갈매기가 날아와 물었다.


“잘 모르겠어. 누군가를 도와주려는 것 같아서 나도 거들고 있어.” 힘주어 밀던 거북이가 이를 악물며 겨우 대답했다.


줄은 너무 길어 끝이 보이지 않았다.


“힘껏 밀어! 얼른 밀자고! 큰 바위가 살려달라고 하잖아!” 갈매기가 기나긴 줄의 맨 앞에 도착했을 때, 작은 꽃게가 연신 소리치고 있었다.


“어머나! 고래잖아!” 갈매기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때 줄 뒤쪽에서 복어의 고함이 들려왔다.


“아무렇게나 밀지 마! 너무 좁잖아. 어휴!” 몸이 줄 사이에 끼어 몹시 불편했던 복어의 몸이 갑자기 부풀어 올랐다.


“아이코.” 모두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맨 앞에 있던 꽃게까지 넘어지면서 뾰족한 집게발로 고래의 살갗을 쭉 긁게 되었다.


그 바람에 고래는 간지러워 몸을 퍼덕이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물보라가 일고 고래는 소리쳤다.


“휴, 이제 자유다!” 고래는 “다들 고마워!” 소리치며 바다로 풍덩 뛰어 들어갔다. “천만에!” 동물들도 고래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아마 수만 년 전의 원시인들은 이렇게 살았을 것이다. 지금도 지구 곳곳의 소수민족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살아가던, 눈부시게 아름다운 인간의 원초적 고향이다.


이러한 지상낙원은 농경을 하고 철기문명이 등장하면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이제 각자 주체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가야 했다.


거대한 문명사회에서는 한 사람 혹은 소수의 권력자가 잘못을 하면, 전체 사회가 잘못될 수 있다.


항상 세상과 자신을 성찰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탁오는 자신의 지나온 삶을 뼈저리게 반성한다.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 앞에 있는 개가 자기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같이 따라서 짖었던 것이다.”


우리가 성인으로 추앙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너의 본성(本性)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라!”


많은 사람들이 시류에 따라 살아가려 한다. 이러한 무사고(無思考)는 현대문명을 풍전등화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길러지는 것은 신비하지 않아요.

소나 돼지나 염소나 닭

모두 시시해요.

그러나, 다람쥐는

볼수록 신기해요.

어디서 죽는 줄 모르는

하늘의 새

바라볼수록 신기해요.


- 임길택, <나 혼자 자라겠어요> 부분



농경이 시작되면서 인간은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인간도 가축이 되어갔다.


모두 시시하게 되었다.


우리도 시적 화자처럼 인간선언을 해야 한다.


“나 혼자 자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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