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찬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라.
- 임제 臨濟 (787-867, 중국의 대선사)
언젠가부터 ‘부모찬스’라는 말이 갑자기 유행하게 되었다. 나는 ‘베이비붐 세대’에 속한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많은 아이들이 태어났다. 이 아이들은 어린 시절에는 보릿고개를 겪었지만, 눈부신 경제
성장에 힘입어 다들 부모세대보다 잘살게 되었다.
‘자식찬스’가 있던 시절이었다. 아마 거의 모든 부모님들이 자식자랑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자식들은 어떤가? 거의 모든 자식들이 자신들의 부모보다 더 못 살게 될 것이다.
이제 경제가 저성장의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는 그야말로 ‘꿀 빠는 세대’였다.
서울 강남에 아파트를 사 놓고 하룻밤 자고 나면 크게 올랐다. 은행 금리도 10%가 넘었다.
대학 4학년 때는 대기업 몇 군데 합격하고서 선택을 해야 했다. 교사, 공무원 같은 안정된 직장은 인기가 없었다.
내가 80년대 초 교직에 있을 때, 개인택시를 하시는 학부모님들이 교사들보다 수입이 더 많았다.
그 당시 시골에서 공고, 상고를 나와 성공한 분들이 많다. 또 신도시가 건설될 때라 그 지역에 땅이 있는 분들은 하루아침에 수백억대의 부자가 되었다.
가난하게 자란 한이 많은 우리 세대는 자식들에게 ‘올인’하는 분들이 많았다. 자식들을 ‘왕자님’ ‘공주님’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우리 자식들은 경제 저성장의 시대를 맞아 취직하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되었다.
부모찬스가 그들의 운명을 결정 짓게 된 것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건물주의 자식들은 얼마나 좋은가! 그들은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 부모의 유산을 이어받아 변호사가 된 최고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비서로 쓸 수 있다.
그들은 의대에 가는 아이들을 비웃는다고 한다. 그들은 병원을 차려 최고의 엘리트 출신 의사들을 직원으로 고용한다.
이 세대를 ‘MZ세대’라고 한다. 고도 성장기를 보낸 베이비붐 부모세대와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MZ자식세대가 만난 것이다.
MZ세대는 198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의 M과 1990년중반에서 2000년대 초에 태어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인터넷을 비롯한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세대다. 디지털 환경은 개성을 중시하는 개인을 낳는다.
이들이 보기에 부모세대는 전체적으로 ‘꼰대’로 보일 것이다.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명령어의 경우에도 작은 사형선고가 있다.”고 말한다.
꼰대들은 카프카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자신들의 말에 사형선고가 있다는 것을.
우리세대들이 곤대가 된 이유는 집단주의 산업시대의 환경에서 자라났기 때문이다.
산업사회는 대공장 중심이라 사람은 기계의 부속품 하나가 되어야 했다. 집단주의, 전체주의가 몸에 배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제 자식들에게 새로운 부모찬스를 주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자신들의 개성을 아름답게 꽃 피워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우리 자식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가는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들은 모든 권위를 죽여야 한다.
그들은 마음속에서 꼰대인 부모를 죽여야 한다. 부모가 먹구름처럼 그들의 하늘에 드리워져 있으면 그들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 진은영, <가족> 부분
요즘 자식들이 부모를 죽이는 끔찍한 사건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부모가 그들에게 '살부모(殺父母) 찬스’를 준 것이다.
부모세대는 자식세대가 정신 속에서 자신들을 죽이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