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by 고석근

장미의 이름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 마르틴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1889-1976, 독일의 철학자)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장미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이름으로 불려도 향기롭기는 마찬가지잖아요.”


로미오는 향기로운 로미오일 뿐인데, 세상 사람들은 그를 몬태규 가(家)의 일원으로만 생각하지 않는가?


사랑의 눈으로 보면,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이름으로도 부를 수가 없다. 단지 향기로운 사람일 뿐이다.


사랑의 눈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대상에게 어떤 이름을 붙인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렇게 하여 탄생한다. 하이데거가 말하듯이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그래서 노자는 말했다. ‘명가명 비상명 名可名 非常名’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붙이면, 그것은 상명(常名, 늘 시공간에 있는 존재)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명은 줄리엣이 본 로미오다. 어떤 이름으로도 로미오를 표현할 수가 없다. 로미오 대신에 돌멩이 하나를 넣어도 된다.


저 돌멩이에게 무슨 이름을 붙일 것인가? 저 나무에게는 무슨 이름을 붙일 것인가?


집을 짓는 사람은 돌멩이가 건축 재료로 보일 것이다. 아이의 눈에는 장난감으로 보일 것이다.


각자 그에 맞게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저 돌멩이의 전존재(全存在)를 드러낼 수가 없다.


오늘 뉴스에 자신을 ‘아줌마’라고 부른 사람에게 화가 난 한 여인이 회칼을 휘둘러 중상을 입혔단다.


퇴직한 한 여자 교장이 시장에 갔다가 모욕을 당했다며 울분을 토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누가 ‘아줌마!’하고 뒤에서 부르더라고 그냥 걸어가는데 더 큰 소리가 뒤에서 들리는 거야. 그게 나를 부르는 거였어.”


‘아줌마’라는 호칭은 언젠가부터 중년 여성을 비하하는 이름이 되었다. 내가 어릴 적에는 나이든 여인들에게 일상적으로 쓰는 이름이었는데.


나는 청춘 시절에 사랑하는 한 여인에게 흑장미를 자주 선물로 주었다. 그런데 최근에 교사가 자신을 흑장미라고 했다며 성희롱으로 고소한 여고생도 있었다.


흑장미라는 이름도 호명하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리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이름에 항거하는 이유는 그 이름이 자신의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줄리엣처럼 사랑의 마음으로 대상을 바라보면, 호칭 때문에 싸울 일은 없어질 것이다.


로미오를 사랑하는 줄리엣에게는 로미오는 향기로운 남자이다. 우리는 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는 향기가 나고 미워하는 사람에게서는 악취가 난다는 것’을


쾌와 불쾌는 생명체의 원초적인 감각이다. 생명체들은 쾌를 찾아가며 생명을 보존한다.


사랑은 인간을 ‘원초적인 존재’로 만들어 준다. 온 몸의 모든 감각이 다 깨어나게 한다.


그에게 천지자연은 지금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다. 그에게 세상은 항상 천지창조의 순간이다.


그가 이름을 부르는 순간, 한 존재가 탄생한다. 그에 의해 하늘과 땅이 생겨나고, 산천초목이 태어난다.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갑자기 검붉은 색깔의 어린 장미가 가까이서 눈에 띄는데

아, 우리가 장미를 찾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왔을 때, 장미는 거기에 피어 있었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부분



시인은 문득 장미를 만난다. ‘우리가 왔을 때, 장미는 거기에 피어 있었다.’


만일 장미를 찾아왔다면, 장미는 어떤 이름에 갇힌 존재였을 것이다.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 없을 때, 한 존재는 신비로움을 내뿜는다. 그와 나는 전존재로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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