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독에서 인심난다
항산(恒産, 안정적인 먹거리)이 없으면 항심(恒心, 바른 마음)도 없다.
- 맹자 孟子 (BC 372?-BC 289?, 중국 전국시대의 철학자)
‘주막듬’이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항상 신나게 놀던 아이는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들어가며 말이 없어졌다.
읍내 학교에서는 항상 희멀건 읍내 아이들이 왁자하게 웃었다. 나는 그들 주위를 빙빙 돌았다.
학교에서는 언제나 읍내 아이들과 시골 아이들을 끼리끼리 모여 앉게 분단 편성을 했다.
읍내 아이들의 눈에는 까만 시골 아이들이 아마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원주민 같았을 것 같다.
그러다 6학년이 되어, 딴 세상 아이들로 보이던 읍내 아이들과 가까이 앉을 기회가 왔다.
읍내에 있는 중학교의 정원이 적어 읍내 국민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일부는 면 단위의 중학교에 진학해야 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효율적인 수업을 위해, 오전 수업이 끝나면 오후에는 전교 석차 순으로 반 편성을 다시 했다.
다행히 성적이 좋았던 나는 전교에서 가장 우수한 아이들이 앉는 분단에 배치되었다.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옆 자리에 여학생 중에서 가장 공부를 잘 하던 아이가 앉았다.
향긋한 읍내 여자 아이. 그 아이가 말을 걸 때 나는 온 몸이 떨렸다. ‘아, 읍내 여자 아이가 내게 말을 다 하다니!’
그 뒤 읍내 남자 아이들과도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서 시골 아이들에게 없는 것을 보았다.
‘여유'였다. 그들은 항상 넉넉한 마음이 있었다. 한 읍내 아이는 그때 나와 약속을 했었다.
‘우리 환갑이 되었을 때, 배구장에서 만나자!’ 그 뒤 그 아이는 가끔 내게 달려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잊지 마!”
또 한 아이는 등교 시간에 나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려 우리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다.
지금 생각하면, 왜 내가 5학년 때까지 그들 근처에도 가지 못했는지 웃음이 나온다.
어른이 되어, 그들의 넉넉한 마음의 근원을 알게 되었다. ‘항산(恒産, 안정적인 먹거리)에서 나오는 항심(恒心, 바른 마음)’이었다.
그때의 나의 경험을 확장해보면, 새로운 정신세계를 열어 제쳤던 많은 귀족들의 넉넉한 마음을 알 것 같다.
이제 인공지능시대가 온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빼앗긴다고 생각하는데, 반대로 보았으면 좋겠다.
일은 이제 기계가 하고 인간은 놀면 된다고. 과거 귀족들이 고상하게 놀 수 있었던 것은 노예들이 일을 했기 때문이다.
인류가 이룬 눈부신 정신문화는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여유에서 나왔다. 이제 기계가 일을 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물론 일하는 사람들의 찬란한 문화도 있었다. 신명이다. 나는 어릴 적 마을 어른들이 아이들처럼 흥겹게 노는 광경을 많이 보았다.
인간이 이룬 눈부신 현대물질문명이 오히려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나는 그 이유를 ‘사람들이 놀 줄 몰라서’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옛날의 귀족처럼 기품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나는 오늘 공부모임에서 우리 인문학 공부모임이 ‘귀족 아카데미’라는 농담을 했다.
한 회원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그러네요.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청소는 로봇이 하네요. 우리는 놀면 되네요.”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신경림, <가난한 사랑의 노래> 부분
지나 온 날들을 생각해 본다.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가난하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을 지레 버렸다.
나도 모르게 서러움들이 내 안에서 터져 나올 때가 있다.
내 마음속에 썩지 않는 슬픔들이 너무나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