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슬픔은 뒤를 돌아보고 근심은 주위를 둘러본다. 하지만 믿음은 위를 바라본다.
- 랄프 왈도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 (1803-1882, 미국의 시인)
영국의 그림책 작가 크리스 네일러 발레스터로스의 ‘언제나 그랬듯이’는 아름다운 기다림을 보여준다.
‘그 친구는 어디선가 불쑥 내게로 왔지요.
우리는 날마다 높은 바위산에서 소풍을 즐겼지요.’
‘우리는 소풍을 즐기다 하루가 저물면
함께 떠오르는 달을 잠자코 바라보았어요.’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그 친구가 보이지 않게 된다. 친구가 갈만한 곳을 샅샅이 찾았지만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망원경으로 여기저기 살펴보다 “앗! 친구다!” 멀리 풀잎에 가려진 친구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짐을 싸서 떠난다. 겁이 나려 할 때는 용감해지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는야 용감한 뿔쇠똥구리.
배고픈 까마귀도 무섭지 않아.
나는야 힘센 뿔쇠똥구리‘
하지만 친구로 보이던 것은 붉은 버섯이었다. 그때 애벌레 친구는 절벽에 매달려 우화(羽化)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갑자기
누군가가 불쑥 내게로 날아왔어요.‘
‘우리는 늘 예전처럼 늘 함께 했어요.’
‘나는 친구와 항상 함께 할 거예요.
언제나 그랬듯이!’
물이 수증기가 될 때도 갑자기 된다. 사람도 그렇다 갑자기 쑤욱 성장한다. 이 ‘갑자기’ 앞에서 우리는 담담할 수 있어야 한다.
전래 동화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기다림의 미학을 보여준다. 오로라 공주는 물레의 방추에 찔려 깊은 잠에 빠지게 된다.
부모의 보호 하에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던 딸은 어느 날 갑자기 월경을 하고 어른이 되어간다.
어린 소녀가 성숙한 여인이 되기 위해서는 백 년 동안 잠을 자야 한다. 잠을 자는 것은 성숙을 위한 기다림이다.
우리는 마냥 널브러질 때가 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이럴 때 주변 사람들은 기다려줘야 한다.
성숙의 시간은 서서히 오는 게 아니라 긴 기다림 후 갑자기 온다. 길 가던 왕자가 잠자는 공주에게 입맞춤을 하여 공주를 깨우게 된다.
왕자는 공주의 내면에 있던 ‘멋진 남성성’이다. 여성은 내면의 남성을 만나야 온전한 인간이 된다.
달빛을 보며 함께 춤출 수 있는 친구는 오랜 기다림 후에 온다. 부모는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거치는 자식을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한다.
긴 여정을 함께 하는 부부도 배우자가 어느 날 갑자기 번데기가 되는 충격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애벌레는 번데기를 거치지 않고서는 날개를 얻지 못한다. 한 인간의 일생은 땅 위를 힘겹게 기어 다니다 번데기가 되고, 우화하여 하늘을 날아다니게 되는 것이다.
마음을 고요히 하여 이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는 알게 된다. 매순간, 천지창조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에도 모래 한 알에서는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고, 꽃 한 송이에서는 새로운 천국이 생겨나고 있다.
사과할래, 안 합니다, 그럼 한번 쳐야겠어, 네, 너도, 네 좋아, 치고 싶다면 쳐야지, 나도 열 받는다, 막무가내 앞에서 나도 그냥 막무가내가 되고 싶다.
그러다 문득, 우리 오 분만 가만있자, 그런 다음 치기로 하자, 멀뚱히 떨어져 앉아 삼백 초를 견딘다. 운동장에 까치 한 마리 날아와 앉는다. 은행잎 호로로 진다. 그 새 늦가을 한 토막 서둘러 간다.
- 조재도, <고요의 힘> 부분
우리 안에는 ‘막무가내’가 있다. 그래서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뱀처럼 그에게 독을 내뿜는다.
하지만, 누가 건드렸을 때, ‘오 분만 가만 있자,’ 그 막무가내를 조금만 누그러뜨리고 가만히 있어 보자.
‘운동장에 까치 한 마리 날아와 앉는다. 은행잎 호로로 진다. 그 새 늦가을 한 토막 서둘러 간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가 보인다. 누가 건드려도 조금 기다려보는 것,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한 인간의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