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넘어서
예술은 당신이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 앤디 워홀 Andy Warhol (1928-1987, 미국의 화가)
한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50대 여인들에게 젊은이들이 “여기는 젊은이들이 오는 곳이니 자리를 비워달라”고 했다고 한다.
아득했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그 젊은이들은 어른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서로의 선을 넘지 맙시다!’
사회적 맹비난을 받은 그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억울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집단주의의 폭력이야!’
철저한 개인이기주의로 무장한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야? 평소에 젊은이들이 여기서 공부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난데없이 어른들이 나타나 우리의 공부를 방해했잖아.’
카페가 언젠가부터 젊은이들의 독서실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 ‘카페는 독서실’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
카페에 온 50대 여인들은 카페가 젊은이들의 독서실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카페에서 공부하려면 남들이 대화하는 것도 감수해야 하지 않아? 조용한 곳을 찾으려면 독서실에 가면 되잖아!’
젊은이들이 카페에서 공부하는 것은 젊은이들의 문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식사를 해도 사진을 찍어 남에게 보낸다.
그들에게는 남에게 보이는 이미지가 중요한 것이다. 현대사회의 모든 가치는 대중이 정한다!
책도 많이 팔리는 책이 가치 있고, 음악도 많은 사람들이 들어야 가치가 있다. 공부를 해도 남이 보아야 잘 된다.
급격히 변하는 사회, 문화 속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 모두가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동양에서는 오랫동안 ‘예악(禮樂)’을 중시했다. 사회규범인 예(禮)가 잘 작동하려면 악(樂)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악은 ‘인간의 심성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을 악기나 노래나 춤으로 표현하는 예술행위’를 말한다.
인간에게는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아는 본성(本性)이 있다. 이 본성의 아름다움을 밖으로 드러나게 하는 게 악인 것이다.
인간은 예술에 의해 ‘작은 나’에서 ‘큰 나’가 된다. 만일 우리 사회가 예술 교육을 중시했다면, 젊은이들과 50대 여인들은 서로의 마음을 잘 읽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예와 법만 강조하다 보니, 우리의 마음이 갈가리 찢어져 버렸다. 우리도 선진국들처럼 예술 교육을 중요시해야 한다.
사람은 예술에 의해 감동을 받으면, 자신을 넘어서게 된다. 평소에 사람을 구분하던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
입시위주의 지식 교육이 중심이 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도덕 교육을 하고 도덕을 강조해도, 우리의 마음은 하나가 되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되려면 우리가 미적(美的) 인간이 되어야 한다. 앤디 워홀은 “예술은 당신이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말했다.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어 있었어,
- 파블로 네루다, <시가 내게로 왔다> 부분
‘시가 내게로 왔다’에서 시 대신에 예술이라는 글자를 넣으면 우리는 예술이 갖는 힘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술에 의해 감동을 받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사라져 버리게 된다. 천지창조 이전의 카오스가 된다.
거기서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어 있었어’ 우리는 계속 새로이 태어나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잘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