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다
생각하면 할수록 나의 마음을 경외심으로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내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과 내 마음 속의 도덕률이 그것이다.
-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1804. 독일의 철학자)
‘2002년 월드컵’을 회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의 가슴에도 그때의 거리 응원의 열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나가던 한 승용차의 창문이 열리더니 한 소녀가 내게 손을 뻗으며 외쳤다.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민이 뜨거운 열기로 하나가 된 적은 나의 생(生)에서 아마 그때가 처음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열기가 가라앉으며, 4강 신화는 앙상한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원시인들은 수시로 의례를 행하며 부족 구성원 전체가 하나가 되는 뜨거운 체험을 했다.
그들은 ‘머리 위에 빛나는 별’을 보고 ‘가슴 속의 도덕률’을 느끼며 하나가 되어갔을 것이다.
나는 시골의 한 작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느 집에 잔치가 있거나 하면, 마을 전체가 들썩였다.
수십 명의 마을 구성원들이 하나의 율동 속에 있었다. 인간은 물질일 때는 각자 존재하지만, 물질을 넘어 에너지장이 될 때는 하나의 파동이 된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외롭다. 그래서 다들 하나가 되고 싶어 한다.
농경사회일 때는 삶이 하나였다. 그래서 하나가 되는 게 쉬웠다. 하지만 산업사회에서는 각자의 삶이 따로 존재한다.
술집에서는 잠시 하나가 되지만, 술집을 나서면 서로의 가슴에 휑하니 바람이 분다.
이제 우리는 하나가 되려는 열망을 멈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점점 공허감에 빠져들 것이다.
외로운 자신을 고요히 들여다보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 외로운 자신의 마음을 고요히 바라보고 있으면, 파도치던 마음이 차츰 가라앉는다.
바다처럼 고요한 마음이 되면, 차츰 마음이 충만해진다. 외로움이 고독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텅 빈 충만, 우리의 본래의 마음이다. 이 마음속에서 노닐 수 있어야 한다. 이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다 사랑스럽다.
이렇게 홀로 설 수 있는 마음이 되면, 우리는 이제 남을 만날 수 있다. 서로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그 이전의 대화는 서로의 독백이었다.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배설하는 것이었다.
대화는 두 사람이 커다란 하나가 되는 신비를 체험하게 한다. 이런 체험들이 쌓여 새로운 공동체를 낳게 될 것이다.
‘자유로운 개인의 공동체’ 우리 모두가 꿈꾸는 세상이다. 이러한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쉽게 하나가 되려한다. 히틀러, 사이비 교주들이 등장하게 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것은 ‘외로운 개인’으로 살아서 그렇다. 우리 모두 자신을 ‘고독한 개인’으로 재탄생시켜가야 한다.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위안이 있다, 타인의
음악에서만, 타인의 시에서만,
타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
- 아담 자가예프스키,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부분
‘타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들에게 달려간다. 서로 부딪쳐 산산조각이 난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아예 타인을 만나려 하지 않는다. 타인이 없는 삶은 지옥이다.
타인을 만나려면 자신 속으로 깊이깊이 들어가야 한다. 타인과 나는 하나의 뿌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