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을 위하여

by 고석근

야성을 위하여



늑대가 개로 길들여지면서 지적 능력이 현저히 감소했다고 한다. ‘안락한 늑대’의 눈빛은 얼마나 순한가?


사람도 그럴 것이다. 야성의 눈부신 빛을 내뿜던 원시인들이 농경을 하게 되면서 안락해져갔을 것이다.


항상 깨어 있는 늑대, 원시인. 그들은 매순간 삼라만상과 소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문명인들은 자신만의 동굴 속으로 웅크려 들어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게 되었다.


많은 능력들이 퇴화되었을 것이다. 그저께 산길을 가고 있는데, 노랫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뒤돌아보니 한 분이 핸드폰의 음악을 크게 켜 놓은 채 걸어오고 있다. 그(녀)의 얼굴은 무심하다.


저렇게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 저 얼굴. 감수성이 퇴화한 것이다.


약해진 감수성으로 살아가게 되면, 일상이 삐걱거리게 된다. 다른 사람, 다른 존재들과의 소통이 끊어져 감성이 삭막해진다.


세상이 사막이 된다. 항상 목이 말라 오아시스를 찾아 나서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정답이 넘치고 넘쳐나는 지식, 정보의 홍수 시대다. 하지만 언제나 진리는 마음속에 있다.


조금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뻔히 보이는 질문들이다. 우리가 워낙 바깥에서만 진리를 찾아왔기에, 마음을 보는 것이 힘들게 되었다.


우리는 야성을 되찾아야 한다. 타고난 엄청난 능력들을 회복해야 한다. 다시 ‘짐승’이 되어야 한다.



나는 짐승이 되어 짐승과 함께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정말 평온하고 스스로 만족한다

나는 서서 오래 오래 그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땀 흘리지 않고 그들의 상황에 불평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둠 속에 잠 못 이루고 죄 때문에 울지 않는다

그들은 신에 대한 의무를 논하여 나를 역겹게 하지 않는다


- 월트 휘트먼, <짐승> 부분



인간은 짐승만도 못한 존재가 되었다.


‘생각하는 동물’이 생각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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