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by 고석근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우리가 정치인들에게 흔히 하는 말, 수신제가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나?


하지만 우리는 이 말을 현대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제가의 가(家)는 지금의 핵가족이 아니다.


봉건시대 귀족의 가를 말한다. 수십 명, 수백 명에 이르는 큰 조직이다. 처첩과 많은 자식들이 있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 많은 하인들이 있다.


이들을 잘 다스릴 수 있으면 충분히 나라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조직 경영의 원리는 단위가 크나 작으나 같기 때문이다.


지금의 핵가족으로 해석하게 되면, 아내(혹은 남편)와 자식들에게 충실한 가장이 나라를 잘 다스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가장이 어떻게 나라를 잘 다스리겠는가? 공적인 이익보다 가정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사람이 어떻게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있겠는가?


제가를 현대에 맞게 해석하면, 가는 회사, 각종 단체, 조직이 될 것이다.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조직의 운영은 너무나 힘들다.


나는 중국 드라마를 좋아한다. 건국 황제들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최초의 황제 진시황, 한고조 유방, 송 태조 조광윤, 명 태조 주원장 등.


이들의 특징은 ‘많은 재주 있는 사람들을 품는 능력’이다. 그들 한 개인을 놓고 보면 그다지 뛰어난 능력이 없다.


강철 왕 앤드류 카네기는 말했다. “나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거느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는 ‘그 능력 하나’로, 강철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보다 뛰어난 사람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영역에서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젬병이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를 정확하게 보아야 한다. 한 분야의 전문가인지, 다른 사람들을 잘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우리는 잘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자신을 하찮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직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찾지 못해서다.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수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멀리 쑥국 쑥국 쑥국새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 나는 벌컥벌컥 술을 마셨다 다시 한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가 화원 앞을 지나다가 문 밖 동그마니 홀로 섰는 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


- 박철,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부분



시인은 막힌 하수도를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 영진설비에 두 번이나 갔지만, 매번 실패하고 만다.


때마침 내리는 비를 피하려다 벌컥 벌컥 술을 마시게 되고, 다음번에는 화원 앞을 지나가다 자스민 한 그루를 사게 된다.


언뜻 보면, 시인은 노임 4만원도 제대로 가져다주지 못하는 생활 무능력자다. 하지만 그는 좋은 시인이다.

시를 잘 쓰며 생활까지 잘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런 뛰어난 시인이 없다면, 우리네 삶이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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