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실현(自己實現)

by 고석근

자기실현(自己實現)



심층 심리학자 칼 융은 “인생의 목적은 자기실현”이라고 말한다. 자기(self)는 나 전체의 중심, 영혼이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무렵, ‘가문을 일으키자!’는 원대한 꿈을 꾸었다. ‘장남’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장남이 그런 꿈을 꾸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그 꿈에는 ‘나의 자기실현’이 있는 것이다.


그 뒤 고등학교 시절에는 무협지를 열심히 읽었다. 새벽 두세 시까지 무협의 세계에 빠져들었다가 비몽사몽간에 학교에 갔다.


주인공들은 항상 어린 시절에 환난을 겪고, 은거하고 있던 도사를 만나거나 비급을 얻어 젊은 시절에 절대고수가 되었다.


나는 그들처럼 천하를 평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심약한 내가 ‘약육강식의 세상’과 맞서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대학 시절에는 철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철학자가 되어 이 세상을 구할 불후의 명저 ‘이상사회’를 쓸 계획을 세웠다.


지금은 글을 쓰고 인문학 강의를 한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이상사회를 지상에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나의 영혼을 꽃 피워가는 긴 여정이었다. 나의 영혼은 언제나 ‘이상사회’를 꿈꾸었다.


계속 꿈을 꾸는 나, 돈키호테다. 천지자연이 나를 통해 꿈을 발현하는 것, 그것이 나의 자기실현이다.


쓰레기들처럼 여기저기 마구 나뒹굴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과거들이 나의 자기실현이라는 끈 하나로 꿰어진다.


민들레가 끝까지 민들레가 되어 가듯이, 나도 끝까지 내가 되어가고 있다. 한껏 나를 꽃 피우고 나면, 나는 나를 땅으로 툭 떨어뜨릴 수 있을 것이다.


다 내려놓고 나는 무한한 천지자연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깊은 안식이 내게 찾아올 것이다.



‘어디 살 만해?’

‘아직 개밥바라기가보여’

삶이 느껴지기도 안 느껴지기도 하는 노인들.

한사코 자신의 삶 내보이려는

로뎅이 부활시킨 칼레의 시민들보다 허허롭다.


- 황동규, <삼척 추암> 부분



‘한사코 자신의 삶 내보이려는’ 노인들.


이미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충분히 내보여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무심결에 그렇게 살아왔기에, 그것들은 그들의 삶이 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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