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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 인문학

by 고석근

주막 인문학


제나라 환공이 대청위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대청 아래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던 윤평이 환공에게 물었다.

“임금님께서는 지금 무엇을 읽고 계신가요?”

“성인의 말씀이시니라.”

“그 성인이 지금 살아 계십니까?”

“이미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임금님께서 읽으시는 것은 옛 사람의 찌꺼기입니다.”

환공은 버럭 성을 내며 벽력같이 소리쳤다.

“이런 고얀 놈! 네놈이 뭘 안다고 참견이냐? 네가 그럴 듯한 이유를 대지 못하면, 죽은 목숨이 되고 말리라.”

윤평이 대답했다.

“제 경험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레바퀴를 깎는다는 것은 손에 숙달된 것이기 때문에 마음으로 느낄 수 있긴 하지만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그것을 제 자식에게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옛날 성인도 깨달은 바를 전하지 못하고 죽었을 겁니다. 그러니 임금님께서 읽으시는 것도 옛 사람의 찌꺼기일 수밖에요.”


- 장자,『장자』에서



어제 저녁에 ㅇ 식당에서 ‘주막 인문학’ 첫 모임이 있었다. 술을 마시며 하나의 주제를 놓고 대화를 하는 모임이다.


어제의 주제는 첫 모임답게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였다. 각자의 생각을 말하고, 그 생각들을 함께 토론했다.

인문학의 공부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서양에서는 인문학을 언어로 정리하려 한다.


그래서 서양의 인문학자들이 쓴 글들은 어렵다. 그들의 생각을 언어로 다 말하려니 개념 정리를 명확히 해야 하고, 논리적으로 말해야 한다.


읽는 사람은 무지 어렵게 느껴진다. 알고 나면 쉬운데, 알기 전까지는 수수께끼를 푸는 것 같기도 하고, 미로를 헤매는 것 같기도 하다.


반면에 동양(중국)의 인문학자들은 그들의 생각을 보여준다. 불교의 선사들은 도가 뭐냐고 물으면, “뜰 앞의 잣나무!”라고 말한다.


알아들으면, 단박에 알게 되지만, 모르면 끝이다. 자상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나는 이 두 방법을 원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의실에서는 서양식으로 논리적으로 인문학을 공부하고, 뒤풀이 시간에 동양식으로 번뜩이는 언어로 서로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랫동안 이 두 가지 방법으로 인문학을 공부했다. 뒤풀이 시간이 참으로 길었다.


저녁부터 시작한 술자리가 새벽녘까지 이어졌다. 술에 취하면 정신이 가장 맑았다. 그때 나의 머리에서는 번득이는 생각들이 떠올랐다.


지금 많은 인문학 강의들이 서양식이다. 그래서 인문학을 공부했다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숨이 막혀 온다.


그들의 메마른 입에서 앙상한 인문학의 언어들이 쏟아져 나온다. 소음이다. 언어들이 허공에서 난무한다.


인문학을 서양식으로 배우게 되면, 인문학은 과학이 되고 만다. 과학은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는 명징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는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동양식으로 인문학을 공부하게 되면, 도사가 되고 만다. 젊은이들이 다 산 노인처럼 말할 때는 끔찍하다.


인문학은 언어로 공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스스로 깨쳐야 한다. 언어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언어를 넘어 달을 보지 못하면, 우리는 손가락을 인문학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인문학이 외려 삶을 방해하게 된다.


우리는 윤편의 깨달음을 항상 상기해야 한다. 인문학은 찌꺼기일 뿐이다. 우리가 깨달아야 그것은 싱싱한 먹거리가 된다.



시는 말하는 것이 아니다:

행위 하는 것이다.

시가 행위 하는 것이

말하는 것이다.

시는

서로 이야기하고 서로 듣는다:

그것이 실재이다.

그리고 “그건 실재야”라고

내가 말하자마자

사라진다.


- 옥따비오 빠스, <말하는 것: 행위 하는 것-로만 야콥슨에게> 부분



삼라만상은 오로지 행위가 있을 뿐이다. 무한한 생성, 춤. 그런데 우리는 편의상 언어를 붙인다.


언어는 사물을 고정시킨다. 내가 “나”라고 말하는 순간, 항상 행위하고 있던 나는 사진처럼 멈춘다.


그래서 인간은 시(詩)를 발명했다. 시는 절(寺)에서 쓰는 언어(言)다. 항상 생동하는 세상을 번갯불처럼 보여준다.


위대한 가르침은 다 시다. 우리가 시가 되지 않고는 위대한 가르침을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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