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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by 고석근

피로사회


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새로운 야만 상태로 치닫고 있다. 활동하는 자, 그러니까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는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따라서 관조적인 면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인간 성격 교정 작업 가운데 하나이다.


- 한병철,『피로사회』에서



공부모임 시간에 피로사회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한 회원이 말했다. “집에서 혼자 조용히 있으면 죄의식이 느껴져요.”


‘혼자 조용히 있으면 죄의식이 느껴지는 것’ 아마 많은 사람들이 여러 형태로 경험을 했을 것이다.


나는 산이나 공원의 벤치에서 혼자 조용히 앉아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긋흘긋 쳐다본다.


그 눈빛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왜 가만히 앉아 있는 거야? 사람이 무언가를 해야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자본주의, 신자유주의가 ‘바쁜 인간’을 만들어냈다. 어릴 적부터 길들여진 경쟁심이 완전히 몸에 배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바쁘다는 것은 잘나간다는 것과 동의어가 되었다. 바쁘지 않은 사람들의 눈빛은 죽어 있다.


공원에 모여 있는 노인들, 그들은 해일처럼 밀려오는 시간에 압도당한 얼굴 표정을 하고 있다.


피로사회를 벗어나는 길은 ‘관조적인 면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관조, 얼마나 멋진 단어인가!


무심히 세상을 보면, 다 아름답다. 무한히 아름답다. 세상을 무심히 보지 않으면, 언어로 보게 된다.


이 시대의 언어는 이 시대의 집단적 사고를 담고 있다. 이 시대의 언어는 무한 경쟁의 바벨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언어로 이 세상을 보는 순간, 우리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이 되고 만다. 꼭대기를 향해 줄달음을 쳐야 한다.


하지만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무심히 이 세상을 바라보면, 이 세상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사람은 비로소 사람이 되고, 나무는 비로소 나무가 되고 구름은 비로소 구름이 된다. 다들 온전히 제자리를 찾아간다.


수묵화를 보는 느낌이 된다. 깊은 산 속의 바위에 평온하게 앉아 산천초목과 하나로 어우러져 있는 사람.


이때 우리는 깊은 평온을 느끼게 된다.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된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인간이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우리는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바쁘게 돌아가며 잃어버린 게 감동이다. 감동이 없는 나날을 견딜 수 없어 우리는 더 바쁘게 살아간다.


고요히 혼자 있는 것, 그것만으로도 깊은 감동이 온다는 것, 우리가 깨달아야 할 이 시대 최고의 미덕이다.


아무것에도 감동하지 않는

쓸쓸한 일상이다.


- 배수아, <무서운 꿈> 부분



우리는 모두 ‘무서운 꿈’을 꾸고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기계가 된 우리는 아무것에도 감동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쓸쓸한 일상과 불야성을 이루는 우리의 밤풍경, 좀비들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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