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화’를 찾아서
신화에서 영감을 받는 사람들은 생존, 안정, 관계, 명예, 자기계발과 같은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살지 않는다. 이런 욕구들은 인간의 의식이 이해할 수 있는 생물학적 방식의 삶과 관련이 있는 반면, 어떤 소명이나 헌신, 믿음,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은 안정적인 삶을 마다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희생한다.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개인적 이해관계나 명예나 자기계발에 대한 욕망이 아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 조셉 캠벨,『블리스로 가는 길』에서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는 고대인도 카필라 성의 왕자였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 밤, 아무도 몰래 성을 빠져 나갔다.
그 당시 그는 결혼하여 어린 아들이 하나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석가는 너무나 무책임한 사람이다.
왕자의 역할과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을 저리도 쉽게 버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그는 삶의 고통(생로병사-生老病死)을 보고 난 후,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에게는 ‘자아실현’보다 더 큰 ‘자아초월’의 욕구가 있다. 자아실현은 육체를 가진 존재로서 갖는 욕구다.
매슬로가 말하는 욕구 5단계다. 생존, 안정, 관계, 명예, 자기계발의 욕구다. 하지만 이런 욕구는 허망하다.
육체의 욕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육체를 넘어선 ‘영적 존재(에너지장의 존재)’이기에 영생의 욕구가 있다.
우리 육체의 실상은 에너지장이다. 에너지장이 우리의 감각에 의해 우리의 육체로 지각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영적 욕구에 한번 사로잡히면, 육체의 욕구를 다 버리게 된다. 영원을 향해 가게 된다.
석가는 오랜 수행 끝에 ‘중도(中道)’를 깨닫는다. 우리 눈에 보이는 이분법(二分法), 유(有)와 무(無), 삶(生)과 죽음(死), 선(善)과 악(惡)... 이 모든 것들이 실은 하나라는 것이다.
우리의 감각으로는 삶과 죽음이 두 개로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 두 개가 하나라는 것이다.
육체는 태어나 살다 죽지만, 육체의 실체는 없다. 인연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육체의 생로병사는 인연에 의한 생성, 변화일 뿐이다. 그러한 육체도 실은 에너지장일 뿐이다.
에너지장의 존재로서의 인간은 영원하지 않는가? 석가는 이러한 이치를 깨닫고 ‘열반(涅槃), 모든 번뇌가 사라진 상태’에 들게 되었다.
그 후 석가의 아내와 아들도 석가의 제자가 되었다. 그들은 비소로 화해를 하게 되었을 것이다.
나도 36세에 나의 신화에 사로잡혔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문제를 도외시하고 집과 직장을 왔다 갔다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차라리 큰 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함께 집 뒤의 절에 갔다. 대웅전에서 석가모니에게 예불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내에게 조용히 말했다. “자기야, 나 직장 그만두고 그냥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어!”
아내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렇게 해.” 그 뒤 나는 자유인이 되어 세상을 떠돌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지?’ 아내와 아들들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하지만 그때는 어쩔 수가 없었다. 애벌레가 자신이 나비인 줄 알았을 때, 어떻게 꼬물꼬물 한평생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나는 석가처럼 위대한 깨달음은 얻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가야 할 길은 찾게 되었다.
그저께 아내가 내게 말했다. “자기야, 제자들을 소중히 생각해. 그들은 자기에게서 삶의 길을 찾고 있어.”
아내도 부부공부모임에서 함께 공부한다. 함께 공부하며 아내는 나의 생각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나는 큰 깨달음은 얻지 못했지만, 성현들의 말씀과 고전이 ‘인간의 길’을 가르쳐준다는 확신은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시시詩視한 인문학’의 이름으로 강의를 하고 책을 내고 있다. 나 같은 둔재도 소명, 신념이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를 이끄는 나의 열정, 작디작은 불꽃이지만 늘 타오르고 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의 인정을 받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
오늘 공부모임에서 한 회원이 자신의 남편이 어떤 열정에 사로잡혔다고 말했다. 안정적인 삶을 마다하고 자신의 길을 가겠다고 한단다.
나는 말했다. “중요한 건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열정이에요. 그 열정이 가리키는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하면 갈 수 있도록 응원해 주세요. 그 길을 가면 행운이 계속 따라와요. 여러 신들과 요정들이 도와주고요.”
나는 나 자신을 기리고 나 자신을 노래한다.
내 믿는 바를 그대 또한 믿게 되리라
내게 속하는 모든 원자(原子)가 그대에게도 속하기 때문
나는 빈둥거리며 내 영혼을 초대한다.
나는 한가로이 기대이며 헤매이며 여름 폴의 이파리를 바라본다.
- 월트 휘트먼, <나 자신의 노래 1> 부분
‘나의 길’을 가는 사람은 사랑을 알게 된다.
‘내게 속하는 모든 원자(原子)가 그대에게도 속하기 때문’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육체적 욕구를 넘어서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살아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