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뻔뻔하게 살기로 했다

by 고석근

나는 뻔뻔하게 살기로 했다


몰두할 가치가 있는 일에 인간은 혼신을 다할 권리가 있으며, 그럴 때에는 성공 여부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의 삶이다.


- 데이비드 시버리,『나는 뻔뻔하게 살기로 했다』에서



길을 가다 보면 뻔뻔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길을 지나가며 앞도 보지 않는다. 자전거 앞으로 다가오며 핸드폰만 보고 있다.


아마 그 사람들도 속으로 자주 말할지 모른다. ‘요즘 사람들 참으로 뻔뻔하단 말이야!’


우리 마음 안에는 ‘신성(神性)’이 있어, 척 보면 아는 지혜가 있다. 우리 모두 이 마음으로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면 세상은 참 살기 좋아질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왜 뻔뻔하게 되었을까? 아마 도시화가 되어 서로 모르는 익명사회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에는 뻔뻔한 사람들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과거의 공동체 사회에서는 서로를 잘 알기에 뻔뻔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 신분이 무너져 모두가 평등한 시민이 된 사회, 우리는 모두 ‘주인 의식’을 갖고 있다.


우리는 드라마에서 뻔뻔한 상류층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들은 거침이 없다. 그들의 눈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들에게 일반인들은 ‘다른 종(種)’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뻔뻔함을 일반인들이 따라하고 있다.


상류층의 문화는 아래로 내려오게 되어 있으니까. 그러면 이렇게 뻔뻔하게 살아가는 우리들 행복한가?


미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시버리는 ‘뻔뻔한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몰두할 가치가 있는 일에 인간은 혼신을 다할 권리가 있으며, 그럴 때에는 성공 여부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의 삶이다.’


그가 말하는 ‘뻔뻔한 삶’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뻔뻔한 삶’이 아니다.


‘나는 뻔뻔하게 살기로 했다’는 그의 책 제목에 낚여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 얼굴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르는 마음’을 합리화하는 것 같다.


우리는 ‘몰두할 가치가 있는 일’에 혼신을 다하고 있는가? 이렇게 살지 않으면 그가 말하는 ‘뻔뻔한 삶’은 불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은 몰두할 가치가 있는 일보다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의 평판에 자신의 인생을 맡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가꾸어가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 안의 마구 날뛰는 마음 때문에 항상 불안하다.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그들은 일상적으로 쾌락을 탐하게 된다.


이렇게 단세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도 모르기에 남의 마음도 모른다.


자신들도 모르게 남들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 그야말로 뻔뻔한 삶이다. 세상은 약육강식의 정글이 된다.


데이비드 시버리는 심리 상담을 하며, 자신의 삶이 없는 집단주의에 젖어 사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꼈을 것이다.


“한번뿐인 내 인생입니다. 이기적으로 살아가십시오! 뻔뻔한 태도로 사셔야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말이라는 건, 맥락 속에서 해석되어져야 한다.


그는 민주사회에 태어나 살아가면서도, 주인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우리들의 굳어버린 마음을 각성시키기 위해 그런 말들을 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가치를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있는가? 남들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들의 삶을 쓰레기처럼 내팽개치고 있는가?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 이생진, <무명도(無名島)> 부분



시인은 ‘이름 없는 섬(無名島)’에서 살고 싶어 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이름을 붙여 놓고는, 등 뒤에서 늘 회초리를 휘두르며 이름에 걸맞게 살아가라고 다그치니까.


이름에 갇혀 살아가는 것은 눈 감고 살아가는 삶이다. 이름을 갖고도 뜬 눈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파우스트의 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