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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근 Nov 29. 2023

아름다움이 인류를 구원하리라  

 아름다움이 인류를 구원하리라      


 “뭐가 부끄러운데요?” 어린 왕자는 그를 돕고 싶었다. “술을 마시는 게 부끄러워!” 주정뱅이는 말을 마치고는 입을 꾹 다문 채 깊은 침묵에 빠졌다. 어린 왕자는 어리둥절한 마음을 안고 그 별을 떠났다. “어른들은 정말 너무, 너무 이상해.” 그가 길을 나서며 중얼거렸다.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이준익 감독의 영화 ‘황산벌’에서 계백 장군과 그의 아내는 ‘국가와 개인’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치열하게 맞서게 된다.      


 백제의 충신 계백 장군은 마지막 전투를 나가기 전, 가족을 몰살시키려 한다. 적의 손에 능욕을 당하느니 자신의 손에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거 마시고 죽을껴, 내 칼에 죽을껴?”     


 하지만, 그이 아내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나가 시집와가꼬... 이날 평생 악밖에 안 남은 년이여! ...염병하곤... 뭣을 응? ...전쟁을 하든가 말든가, 아! 나라가 쳐망해불든가 말든가? 아, 그것이 뭣인디 니가 내 새끼들을 죽여분다 살려분다 그래야!”     


 그의 아내는 오로지 나라에 대한 충성과 자신의 명예만 중시하는 남편의 태도가 어처구니없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의 아내는 본능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내 새끼들, 내 가족의 생명이야! 사람의 생명이야!’     

 그의 아내는 현대의 정치철학을 가졌다. ‘내 가족을 죽게 하는 나라가 무슨 나라야?’      


 그렇다고 계백 장군의 ‘나라에 대한 충성과 자신에 대한 명예’는 잘못된 걸까? ‘나라냐? 개인이냐?’ 이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미의식(美意識)’이다.      


 인간은 미의식을 타고난다. 어떤 대상을 보면, ‘미와 추’로 나눠서 보게 된다. 이 본능적인 미의식이 인간을 아름답게 살아가게 한다.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惻隱之心), 우물에 빠지려 하는 아이를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에게 달려가는 마음이다.     


 이런 사람을 보면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반대로 아이를 마구 때리는 사람에게서는 추함을 느끼게 된다.     


 이런 미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아름답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미와 추를 새로이 배우게 된다.   


 일본 제국주의의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아름답다고 배웠을 것이다.     


 그렇게 교육받은 사람들은 그들에게서 숭고미(崇高美)를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후천적인 미의식은 우리가 항상 성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어린 왕자’에 나오는 술주정뱅이가 되고 만다. 그는 항상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의 선천적인 미의식과 후천적인 미의식이 일상생활에서 항상 충돌하기 때문일 것이다.     


 겉으로는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이 당당하게 보여도, 그들의 깊은 무의식에서는 ‘이건 아니야!’ 하는 소리가 가끔 들려왔을 것이다.     


 무의식과 의식이 충돌할 때, 우리는 자신의 분열을 느끼게 되고 그것은 죄의식, 부끄러운 감정으로 나타날 것이다.     


 술주정뱅이는 자신이 부끄러워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는 자신이 부끄러워 또 술을 마신다.        


 중독은 분열된 자아가 삶을 견디는 방법일 것이다. 어느 한 곳에 몰두하지 않고는 서로 싸우는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어린 왕자의 타고난 미적 감수성은 중얼거리게 된다. “어른들은 정말 너무, 너무 이상해.”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저서 ‘블리스로 가는 길’에는 충돌하는 바위를 통과해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신화가 나온다.     


 영웅이 되려면 맞부딪치는 한 쌍의 바위를 통과해야 한다. 그 틈새가 닫히기 전에 빠져나온 영웅은 ‘이원론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된다.     


 나라에 무조건 충성하는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은 사람을 선명하게 두 개로 나눠서 본다.     


 ‘애국이냐? 매국이냐?’ 이러한 맹목적인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영웅이 된다. 충신이 가족을 다 죽이면서까지 지켜야 나라는 어떤 나라여야 할까?     


 백제가 그런 나라였을까? 그렇지 않다는 걸 계백 장군의 아내는 본능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영화 ‘황산벌’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나라’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우리는 계백 장군과 그의 아내의 치열한 대화를 통해 우리의 미의식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타고난 아름다운 미의식을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개인의 삶과 나라에 대한 아름다운 사랑을 위하여.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며 

 꽃이 집니다


 - 김용택, <그랬다지요> 부분



 시인의 눈은 맑디맑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본다.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며 꽃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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