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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근 Dec 06. 2023

우연과 필연   

 우연과 필연     


 여섯 해 전, 사하라 사막에서 비행기 사고를 만났다. (...) 그러니 해 뜰 무렵 이상한 작은 목소리가 나를 불러 깨웠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겠는가.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의 주인공 ‘나’는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했을 때,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해 뜰 무렵 이상한 작은 목소리가 나를 불러 깨웠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겠는가.’     


 이 만남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우연일 것이다. 하필이면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하는 게 나의 생각과 의지로 가능하겠는가?      


 어린 왕자가 그 시간, 그 장소에 나타나는 것이 어린 왕자의 생각과 의지로 가능하겠는가?     


 두 사람의 우연한 만남, 하지만 단지 우연한 만남일까?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에 있는 것들이다.     


 아예 마음에 없으면 만날 수 없다. 내가 ‘사하라 사막’이라는 언어와 ‘조그만 아이(어린 왕자)’에 대한 언어를 아예 모른다면, 두 사람의 만남은 불가능하다.       


 ‘사막’이라는 언어를 모르는 사람은 사막을 만날 수 없다. 우리의 생각은 언어다. 언어가 없으면, 보아도 보지 못한다.     


 따라서 두 사람의 만남은 필연이다. 두 사람에 대한 서로의 마음이 있었기에,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비행사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는 외로웠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과 마음이 통하지 않아 항상 혼자 지냈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린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뱀’ 그림을 다들 모자라고 말하니, 어떻게 그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겠는가?     


 진심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이 혼자 살아가던 그가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했을 때, 누구를 만나겠는가?     


 그가 새벽에 만난 어린 왕자는 그의 내면에 있는 ‘아이’다. 우리 안에는 ‘내면 아이’가 있다.          


 항상 울고 있는 아이, 자라면서 크게 상처를 받아 성장을 멈춘 작은 아이. 사람은 가장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의 영혼(내면 아이)을 만난다.     


 가장 위급한 상황을 돌파하게 하는 힘은 영혼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영혼은 우리에게 영원한 자유를 준다.       

 심층 심리학자 칼 융은 인생의 목적은 ‘자기실현’이라고 말한다. ‘자기(Self)’는 우리의 영혼이다.     


 우리의 일생은 우리의 영혼이 자신을 실현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면 이 말이 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지나간 시간들은 잘 살펴보면, 목표 없이 지나간 것 같지만 어떤 뚜렷한 길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오래전에 MBTI 성격검사를 해보고서 크게 놀란 적이 있다. 나의 지나온 길이 모두 해명이 되었다.     


 계속 헤매며 살아온 것 같은데, 줄기차게 한 길을 찾아왔던 것이었다. 나의 성격은 ‘돈키호테’였다.     


 나는 계속 꿈을 꾸며 살아왔던 것이다. 나는 가난하게 자랐기에, 항상 나 스스로 나의 길을 찾아갔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나를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이성(理性)적인 인간으로 생각해 왔다.     


 나의 감정, 꿈은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내 안에서는 언제나 불덩이가 돌아다니는 느낌이었다. 그 불덩이가 밖으로 솟구쳐 올라오면, 나는 이성을 잃어버렸다.      


 갑자기 화를 내고 울부짖었다. 결국에는 화병에 걸리고 말았다. 오랫동안 자신으로 살아오지 않은 가혹한 대가였다.      


 이제 나는 나로 살아간다. 마음이 더없이 편안하다. 그리고 내 안에서 솟구쳐올라오는 불꽃은 나의 길을 환하게 밝혀준다.     


 나는 나의 한길을 꿋꿋이 걸어간다. 내가 만나는 모든 우연들은 내가 만든 인연들이다.      


 비행사 나가 어린 왕자를 만나 온전한 인간이 되었듯이, 나도 나의 영혼을 만나 온전한 내가 되어갈 것이다. 


          

 치료하기 어려운 슬픔을 가진 

 한 얼굴과 우연히 마주칠 때      


 긴 목의 걸인 여자 ― 

 나는 자유예요 당신이 얻고자 하는 

 많은 것들과 아랑곳없는 완전한 폐허예요      


 - 김선우, <사랑의 거처> 부분           



 시인은 우연히 ‘긴 목의 걸인 여자’를 만난다.     


 그녀가 고토록 찾아 헤맸던 ‘사랑의 거처’임을 알아차린다. 우리도 가끔 길에서 걸인은 만나게 된다.     


 그때마다 우리는 종종걸음을 친다. 사랑의 거처가 두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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