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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근 Nov 22. 2023

악은 항상 선과 함께하는 괴물이다   

 악은 항상 선과 함께하는 괴물이다      


 무나 장미나무의 어린 싹이면 마음껏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그러나 나쁜 식물의 싹이면 그걸 알아차리자마자 뽑아 버려야 한다.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다리가 불편한 아내를 부축하며 길을 가던 70대 노인이 한 초등학생 아이가 아파트 10층에서 던진 벽돌을 맞고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아이는 경찰 조사에서 “별 생각 없이 장난으로 돌을 던졌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 아이는 10세 미만이라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 그 70대 노인의 죽음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불운’ 탓으로 돌려야 하는가? 그렇게 되면 인간의 이성(理性)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은 어떻게 되는가?     


 어린아이를 처벌하지 않는 건,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맞을 것이다. 어린아이는 약하기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가 힘들었다.     


 어린아이가 벽돌을 다른 사람에게 던진다고 해서 크게 다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마을에서는 어린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려 도덕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현대문명사회에서는? 어린아이도 엄청난 힘을 갖게 된다. 아파트 고층에서 던지는 벽돌은 폭탄이 된다.         


 지금은 아이들이 도덕을 가정, 학교에서 훈시로 배운다. 다른 아이들과 놀면서 배울 기회가 적다.     


 머리로 배운 도덕은 삶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성년이기 때문이다. 아직 이성적인 사고를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도덕을 몸으로 배워야 한다. 몸으로 배우고 익히는 공부를 해야 한다. 몸에 배인 도덕만이 실천으로 이어진다.     


 나는 70대 노인의 허망한 죽음을 생각하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의 무서운 기억이 떠올랐다.       


 고2 때였다. 주물 공장으로 실습을 나갔다. 우리는 선생님들 몰래 아령을 만들어 모래 속에 숨겨 놓았다.      


 우리는 완성된 아령을 담장 밖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는 실습이 끝나 주물 공장을 나와서 각자의 아령을 가져갔다.       


 그런데, 무심코 담장 밖으로 던진 아령들, 벌판에 떨어졌기에 망정이지 지나가던 사람의 머리에 맞았으면 어떻게 되었나?     


 우리는 그때 미성년자였기에 누가 다쳤다 하더라도 크게 처벌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했을까? 몸으로 익힌 도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 안에는 선의 씨앗과 악의 씨앗이 함께 자라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마음을 살펴보아야 한다.     


 선의 싹을 기르고 악의 싹을 뽑아 버려야 한다. 실제로 행하지 않고 머리로만 배운 도덕의식은 실제의 삶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니체는 말했다. “악은 항상 선과 함께하는 괴물이다.” 우리의 원래의 마음은 무선무악(無善無惡), 선도 없고 악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선과 악이 생겨난다. 우리는 선과 더불어 악과도 함께 살아야 한다.     


 70대 노인을 죽인 그 아이는 지금 어떤 심정일까? 우리는 그 노인과 아이를 생각하며 우리의 도덕 교육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게 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몸으로 도덕을 익히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의 지식 위주의 입시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복지사회가 되어야 ‘삶을 가꾸는 교육’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 모두 복지사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었으면 좋겠다. 많은 부작용이 있겠지만, 고쳐나가면 된다.     


 나보다 부자인 친구에게 동정받아서 

 혹은 나보다 강한 친구에게 놀림당해서 

 울컥 화가 나 주먹을 휘둘렀을 때, 

 화나지 않는 또 하나의 마음이


 - 이시카와 다쿠보쿠, <주먹> 부분     



 화가 난 주먹, 그 주먹을 내미는 마음의 한구석에는 ‘화나지 않는 또 하나의 마음이’ 있다.     


 이 마음의 싹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햇빛을 쬐어주어야 한다.     


 그러면 화가 났을 때, 자신과 상대방의 마음을 함께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서서히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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