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라

by 고석근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 꽃을 판단했어야 했는데. 그 꽃은 나를 향기롭게 해주고 내 마음을 밝게 해주었어. 거기서 도망쳐 나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 어설픈 거짓말 뒤에 따뜻한 마음이 숨어 있는 걸 눈치챘어야 했는데.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왕자』에서



어린 왕자는 어느 날, 새로운 꽃을 발견한다. 어린 왕자는 꽃을 보며 말한다. “참 아름다워요!”


이 꽃은 누굴까? 혼자 사는 별에 나타난 꽃 한 송이. 나 아닌 너! 바로 부모다. 인간은 태어나 어머니 품에서 자란다.


아기는 어머니와 자신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 세상에는 오로지 자신만 있을 뿐이다.


오직 나만 있는 세상. 이 세상은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말하는 상상계, 상상의 세계다.


우리 마음에 영원히 남아 있는 유토피아다. 우리는 한평생 이 지상낙원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아버지가 나타난다. 아기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된다. 옷을 입고 일을 해야 한다.


아버지의 세계, 상징계다. 이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촘촘한 상징의 세계다. ‘이건 하라, 저건 하지 마라. 이건 좋아, 저건 나빠.’


갑자기 아기는 무서운 부모를 만난 것이다. 아이는 자신의 집을 도망쳐 나오는 꿈을 꾸게 된다.


아이들은 일기장에 쓴다. ‘아버지, 어머니가 죽었으면 좋겠어.’ 부모는 일기장을 보고 경악한다.


별을 떠난 어린 왕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 꽃을 판단했어야 했는데. 그 꽃은 나를 향기롭게 해주고

내 마음을 밝게 해주었어. (...) 그 어설픈 거짓말 뒤에 따뜻한 마음이 숨어 있는 걸 눈치챘어야 했는데.’


다른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걸어 다니고 스스로 먹이를 찾아 나선다. 인간만이 가만히 누워 지낸다.


아기는 어머니의 자궁 속처럼 안락한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 세계를 떠난다는 게 얼마나 무서울까?


그래서 모든 자녀들은 부모를 원망한다. 한이 맺혀 있다. 좋은 부모? 그건 허상이다.


인간은 한평생 부모를 극복하는 과제를 안고 살아간다. 중국의 임제 선사는 말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라!”


인간은 마음속의 모든 권위를 죽여야 한다. 한 인간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어린 왕자는 집을 떠나 영웅의 길을 간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서서히 자신을 알아간다.


사막의 여우를 만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둘이 만나 서로를 길들여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한 인간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의해 자신을 창조한다. 인간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만나는 존재와 함께 서로를 길들이게 된다. 하나이면서 둘이 되는 기적을 만나게 된다.


어린 왕자는 이제 자신이 떠난 별의 꽃, 부모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어린 왕자는 뱀에게 물려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간다.


뱀은 육체와 영혼이 하나임을 깨닫게 해주는 내면의 현자다. 어린 왕자는 이제 온전한 인간이 되었다.



나의 미래여, 내 진짜 어머니여, 나의 세계여,

그대의 빛 속으로 그대의 넓은 포용 속으로,

그대의 혐오 속으로

나는 빠져든다.


- 앙리 미쇼, <불행 속의 휴식> 부분



우리는 진짜 어머니를 만나야 한다. 그리하여 천지자연 속에서 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불행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다. 삼라만상은 하나의 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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