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길고 인생은 짧다
그는 자주 눈을 동그랗게 떴는데, 그러면 우리가 습관적으로 주의하지 않고 보아 넘기는 것들이 그의 앞에서 엄청난 수수께끼로 되살아났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우리는 하루가 너무나 짧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정신없이 놀다 보면, 어느새 해가 기울고,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낸 하루하루가 쌓인 어린 시절, 그런데 지나고 보면 그 어린 시절이 왜 그렇게 긴 걸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는 게 시들해진다. 무엇하나 신나는 게 없다. 하루하루가 길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렇게 긴 하루하루가 쌓인 시간들, 왜 그렇게 짧은가? 일 년이, 십 년이, 쏜살처럼 지나간다.
하루는 길고 인생은 짧게 된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이 저주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된다.
어린 시절이 긴 이유는 기억되는 것이 많아서 그렇다. 정신없이 놀면서, 매 순간이 생생하다.
매 순간의 기억들이 머리에 생생하게 동영상처럼 찍혀진다. 엄청나게 양이 많다. 긴 시간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날이 그날 같아진다. 별로 기억될 게 없다. 지나고 보면, 순간이다.
죽음이 다가오며,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 한바탕의 꿈이 된다. 너무나 허망하다.
누구나 장수(長壽)를 꿈꾼다. 그런데 그 꿈은 오래 산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천년, 만년을 살아도 지나고 보면 순간이 된다.
장수하기 위해서는 ‘아이’가 되어야 한다. 아이처럼 사는 게 신나야 한다. 아이가 된 인간이 조르바다.
‘그는 자주 눈을 동그랗게 떴는데, 그러면 우리가 습관적으로 주의하지 않고 보아 넘기는 것들이 그의 앞에서 엄청난 수수께끼로 되살아났다.’
습관(習慣)이 문제다. 오랫동안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다 보면, 그 행동들이 몸에 익은 채로 굳어지게 된다.
밥 먹고, 샤워하고, 출근하고, 근무하고, 술집에 가고, 집에 오고... . 월화수목금이 같아진다.
늦잠 자고, 혹은 여행을 가고, 경조사를 챙기고, TV를 보고, 외식을 하고... . 토일이 같아진다.
우리는 다람쥐처럼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을 뱅글뱅글 돈다. 이렇게 습관적으로 사는 사람의 몸과 마음은 딱딱하게 굳어 있게 된다.
이 세상도 함께 딱딱하게 굳어진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풀어야 한다. 아이 같은 부드러운 몸을 만들어야 한다.
아이의 눈으로 이 세상을 봐야 한다. 그러면, 딱딱하게 굳어 있던 세상이 풀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이 세상이 마법이 풀린 것처럼 깨어날 것이다. 삼라만상이 환호작약(歡呼雀躍)하기 시작할 것이다.
슬픔은
말을 떠나
마음을 떠나
그냥 거기에 있는
오늘의 사물들
- 다나카와 슌타로, <슬픔은> 부분
우리는 슬프다. ‘그냥 거기에 있는/ 오늘의 사물들’이 되었다.
우리는 조르바처럼 눈을 동그렇게 눈을 떠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사물들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
그러면 그들은 부스스 깨어나기 시작한다. 그들은 모두 꽃으로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