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를 위하여

by 고석근

‘노숙자’를 위하여


그래, 알겠다. 조르바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술자리에서 상담 심리학을 공부하는 분이 말했다.


“한국에서 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한번 되고 나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는 직업이 두 개가 있대요. 뭔지 아셔요?”


우리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 직업이 뭐가 있을까? 두 개나 된다니.’


그녀가 씩 웃으며 말했다. “노숙자와 대학교수래요.” 그 순간, 우리는 웃음보를 터뜨렸다.


물론 그녀의 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우리의 웃음보를 터뜨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오늘 아침 뉴스에 ‘화장실서 2시간 폴짝… 최강한파 속 거리의 노숙인들’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그들은 “발 깨질 것 같아” “살이 찢어지는 고통”이라고 하면서도 노숙자 쉼터에는 입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분들은 쉼터에는 ‘담배 피우지마라’ ‘술 먹지 마라’ 하는 구속들이 있으니까 밖에서 지낸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혀를 찰 것이다. ‘헉! 그런 것들 때문에 영화 15도의 추위를 견디고 있다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인간을 그 자체로 이해해야 한다. 왜 그들은 자유를 그리도 ‘간절히’ 원하는 걸까?


지식인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막노동꾼 조르바를 만난 심정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세련된 지식인이 어찌하여 막노동꾼 조르바를 보고 이리도 경탄했을까? 그는 ‘진정한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머리에 가득한 지식으로 가려진 자신 안의 생명성,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 그 야성으로 살아가는 생기가 넘치는 인간을 보았을 것이다.


야성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온전한 삶을 살다 간다. 그에 비해 머리의 지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일생은 얼마나 빈약한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대학교수직을 그만둔 문화학 전공의 대학교수가 있다고 한다.


그는 자신 안의 야성의 울부짖음으로 마구 달려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지식인의 결단과 노숙자들의 결단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크게 보면, 자유를 향한 대 탈주다. 개미는 부지런함의 상징이 되어있는데,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개미굴 속의 개미들을 관찰해보면, 30%는 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비상시를 대비한 예비군이라고 한다.

개미 나라에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발생할 때, 이들이 나서게 된다고 한다. 노숙자도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다들 일하는 게 정상이라고 부르짖고 있을 때, 그들은 비상 상황을 대비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물론 이런 것은 무의식중에 일어나기에 본인들도 모를 것이다. 인간은 현대 사회에서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


인류 전체가 ‘일하는 인간’이 되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어떤 비상사태가 일어났을 때, 이런 인간형으로는 대처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인간을 뭐라고 규정하지 말아야 한다. 삼라만상은 다 무한한 신비다. 우리는 무한한 신비 앞에서 경건해야 한다.


노숙자들의 마음이 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들을 도와야 할 것이다. 그들은 바로 또 다른 우리 자신이니까.


어제 공부 모임에서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함께 읽고 얘기를 나눴다. 다들 상기된 얼굴 표정이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이 시대를 조르바처럼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스스로를 성찰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이야.

요새

비겁하게 치마 속으로 손을 들이미는

때 묻고 약아빠진 졸개들은 많은데

불꽃을 찾아온 사막을 헤매이며

검은 눈썹을 태우는

진짜 멋지고 당당한 잡놈은

멸종 위기네.


- 문정희, <다시 남자를 위하여> 부분



이 시를 읽는 남자들은, ‘다시 남자를 위하여’ 화들짝 깨어날 것이다.


그들의 깊은 내면에서 ‘검은 눈썹을 태우는/ 진짜 멋지고 당당한 잡놈’이 몸을 일으킬 것이다.


노숙자들은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한 전령사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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