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에서 손을 놓아라

by 고석근

절벽에서 손을 놓아라


대장은 자유롭지 않수다. 대장이 매여 있는 줄은 다른 사람들 것보다 조금 길기는 하지만 그뿐이오. 대장은 조금 긴 끈을 가지고 있어 왔다 갔다 하면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 끈을 잘라내지는 못했수다. (…) 정신이라는 놈은 결코 끈을 놓지 않아요. 절대로! 그 악당은 손아귀에 그 끈을 꽉 쥐고 있답니다. 그 끈을 놓으면 그놈은 망하는 거니까요. 불쌍하게도 사라지는 거죠! 하지만 그 끈을 자르지 않으면, 대장, 인생에 뭐가 있겠수?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현애살수(懸崖撒手)’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절벽에 매달려 잡고 있던 손을 놓아라’라는 뜻이다.


한 스님이 절벽 가파른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나뭇가지를 붙잡고 매달려서 “사람 살려!” 하고 외쳤다.


스님이 매달린 사람을 보니, 장님이었다. 장님이 매달린 나뭇가지는 땅에서 한 뼘도 되지 않았다.


스님은 장님에게 두 손을 놓으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위를 보지 못하는 장님은 손을 놓지 못하다가 그만 손에 힘이 빠져서 아래로 떨어졌다.


떨어지고 보니 발이 땅에 닿았다. 이 장님은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비유일 것이다. 눈이 있어도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중생.


삶의 이치는 ‘사즉생생즉사(死卽生生卽死)이다. 살기로 마음을 먹으면 죽고, 죽기로 마음을 먹으면 사는 것’이다.


왜 그럴까? 동물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죽기로 마음을 먹은 동물은 죽고 말 것이다.


인간에게는 ‘자아(自我, Ego), 나라는 의식’이 있어서 그렇다. 인간의 생각으로 만들어진 나라는 것은 허상이다.


남자, 여자, 사장, 회사원... 이러한 사회에서 부여한 이름들이다. 이런 것들은 어떤 역할이지 실체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역할들을 열심히 하다 보면, 자신이 그 이름들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이런 망상에 빠지게 되면, 올바른 판단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잘하려고 한 것이 나쁜 것이 되고, 살려고 가는 길이 죽으러 가는 길이 되는 것이다.


자아는 자신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을 중심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니, 이 세상이 제대로 보일 리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죽어야 한다. 죽으려 하면, 자아가 죽게 된다. 자아가 죽으면, 우리 마음의 중심에 있는 자기(自己, Self)가 깨어난다.


자기는 천지자연과 하나인 마음이다. 이 마음으로 살아가면, 천지자연과 하나가 되어 진리(眞理), 참된 이치에 맞는 삶이 된다.


조르바는 생각(자아 중심)으로 살아가는 카잔차키스에게 조언해 준다.


“정신이라는 놈은 결코 끈을 놓지 않아요. 절대로! 그 악당은 손아귀에 그 끈을 꽉 쥐고 있답니다. 그 끈을 놓으면 그놈은 망하는 거니까요. 불쌍하게도 사라지는 거죠! 하지만 그 끈을 자르지 않으면, 대장, 인생에 뭐가 있겠수?”


인간은 다른 동물에게 없는 ‘생각’이라는 생겨났다. 우리는 평소에 이 생각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이 생각은 일상생활에서는 도움이 되지만, 심오한 인생의 비밀은 알지 못한다.


인생이라는 큰 길을 갈 때는 가끔 이 생각이라는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면 마음 깊은 곳에서 등불이 켜진다.



어두운 길을 등불 없이도 갈 것 같다

걸어서도 바다를 건널 것 같다

날개 없이도 하늘을 날 것같다


- 이생진, <널 만나고부터> 부분



인간은 누구를 만나 무엇이 된다.


자식을 만나면 부모가 되고, 아내를 만나면 남편이 되고, 스승을 만나면 제자가 된다.


그런데 우리가 사랑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우리 안의 자기를 서로 깨워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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