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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근 Jan 31. 2024

희생제의   

 희생제의       


 모든 믿음과 모든 환상에서 벗어나서 기대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는 최후의 인간은 자신의 정신을 만들어 준 진흙도, 이 정신이 뿌리내리고 수액을 빨아올릴 토양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인간이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인문학을 강의하면서 가끔 난감할 때가 있다. 사람들이 나를 ‘돈 앞에 초연한 성인군자’로 볼 때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나 돈을 제일 좋아해요!”라고 말해야 하나? 아니면 정말 성인군자처럼 초연한 척해야 하나?     


 대범한 척...... . 그러면 내가 어떻게 될까? 대범해질까? 나는 내가 망가진다고 생각한다.     


 상처받은 나의 마음은 반드시 다른 희생양을 찾게 된다.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화를 내고 피해를 주게 된다.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어. 만일 화를 내지 않으면, 나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게 될 것이다.     


 나는 쪼잔한 인간을 고수해야 한다. 나의 섬세한 감정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통 큰 척하지 말아야 한다.     


 나를 속이게 되면, 차츰 남을 속이게 된다. 나는 나의 인품만큼 살아가야 한다. 나는 언제라도 풍선처럼 부풀려질 수 있다.     


 한 번 속이기 어렵지 한 번이라도 자신을 속이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자연스레 자신과 남을 속이게 된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시험한다.      


 “너의 외아들 이삭을 모리산에서 제사를 지낼 때 나에게 희생 제물로 바쳐라!”     


 아브라함은 이삭을 묶어 제단 위에 눕히고 칼로 죽이려고 한다. 그 순간 천사가 나타나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 준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알겠다. 너의 자손들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게 하고, 대대손손 축복을 내리겠노라!”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했다. 희생은 천지자연의 이치다. 삼라만상이 서로에게 몸을 바치지 않으면, 이 우주는 끝나고 만다.     


 그런데 인간은 ‘생각’이라는 게 있어,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쉽다. 삼라만상이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는 망상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버릴 줄 알아야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     


 아브라함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아들 이삭을 버릴 수 있을 때, 아브라함은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후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희생을 당하게 된다. 이제 더는 희생제의가 필요 없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말했다. “나는 내가 사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를 살아간다.” 그는 내면에 있는 신성(神性), 그리스도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안의 신으로 살아갈 때, 희생제의는 필요가 없게 된다. 문제는 자신의 신으로 살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으로 살아갈 때다.     


 이 시대는 돈이 최고의 신이다. 다들 돈을 숭배한다. 어떤 사람도 이 시대의 종교를 외면하기 힘들다.     


 천상병 시인은 지인들에게 세금으로 500원 1000원씩 받아냈다고 한다. 술값으로 쓰기 위해. 그러다 나중에는 1000원 2000원으로 인상했다고 한다.     


 돈을 뜯기는 지인들은 너무나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희생제의다. 사랑이 충만한 시인에게 가장 소중한 돈을 내면서 함께 사랑이 충만해졌을 것이다.      


 사랑이 충만하지 않은 사람은 시인의 흉내를 내지 말아야 한다. 돈의 신을 배신한 척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돈 앞에서 항상 엄숙해야 한다. 돈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자신과 남을 함부로 대하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한평생 무료로 강의를 했다고 한다. 그는 ‘모든 믿음과 모든 환상에서 벗어나서 기대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는’ 인간이었다.      


 나도 소크라테스만큼 수준이 높아져 무료 강의를 하고 싶다. 그때까지는 돈 몇 푼 갖고 쪼잔하게 구는 못난 강사를 고수하려 한다.     



 차라리 돈 많은 손이 거두기를 바랐다 

 행여 그 뜻밖의 유혹이 가난한 이들의 눈에 띄어 

 도둑처럼 마음 졸이다가 눈 질끈 감고 말 때 

 가뜩이나 누추한 행색에 

 어렵사리 지켜온 마음마저 누추해질 것을 상상하면 

 아찔하다 내 죄가 너무 크다      


 - 김규성, <잃어버리기도 쉽지 않다> 부분           



 돈을 잃어버린 시인은 가슴을 친다.      


 ‘가난한 사람이 주워 마음마저 누추해지면 어떻게 되나?’       


 그래서 우리는 돈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큰 죄를 저지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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