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의 책임이야
직장인에게 퇴근 시간만큼 행복한 시간이 있을까. 오후 다섯 시부터 여섯 시까지의 시간이 가장 느리다. 시곗바늘이 고장인가 싶어 닳도록 시계를 쳐다보는 날이 있다. 오늘도 그런 날 중의 하루다.
간식도 놓칠 만큼 바빴다. 이른 점심을 먹고 여섯 시 퇴근 시간까지 버티다 보니 배고픔을 느꼈다. 마침 차를 가지고 출근했던 남편이 퇴근길에 직장 앞으로 와주었다. 배고픈 아내를 위해 지인 추천으로 알아둔 손맛이 좋다는 어느 음식점으로 나를 데려갔다. 밥집보다는 술집에 가까웠다.
"사장님 저희는 밥 먹으러 왔어요."
"아. 어쩌나 저희는 밥집이 아닌데요."
"에고! 밥이 없는지는 몰랐어요. 저희는 술 말고 밥을 먹을 건데.... 죄송해요. 다음에 다시 올게요." 앉자마자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나야 했다. 문을 열고 나오려는데, 가게 사장님이 그러신다.
"네. 그러세요, 반찬 나오는 밥집에서 드셔요. 저희는 공깃밥은 있는데 반찬이 없어요."
으응? 이건 무슨 소리가. 공깃밥이 있다고? 메뉴에는 순두부찌개와 두부전골이 있었다. 그러면 반찬은 없어도 되었다. 맛집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술안주 위주의 가게였다. 남편과 나는 술을 먹지는 않지만 음식 솜씨가 그만이라는 남편 지인의 추천으로 갔던 거다.
이미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나오는 중이라 다시 들어가 앉기도 멋쩍었다. 테이블마다 빈자리가 없이 꽉 차 있었다. 가게 문을 열고 나오는 마음이 뭔가 찜찜하고 아쉽다.
만약 사장님이 말의 순서를 바꾸어서 했다면 어땠을까? 처음부터 밥집이 아닌 술안주 위주였단 걸 알고 들어갔다. 메뉴에 있는 순두부찌개와 파전이 일미라고 하여서 간 것이고, 술은 먹지 않으니, 공깃밥 하나면 충분히 만족할 터였다.
싸고 큰 가게가 근처에 생겼다고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 메뉴를 어떻게 팔까를 고민해. 손님을 대하는 방식 하나하나가 판매와 직결된다면 내 앞에 놓인 1분 1초가 중요하게 여겨질 거야.
장사의 신
사장님의 손님을 대하는 영업 방식이 아쉬웠다. 배고픈 손님이 반찬과 함께 밥을 먹기를 바라는 선한 마음으로 그리 말했다는 걸 안다. 알지만 묘하게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볼 기회를 놓친 것이 사장님 탓 같기만 했다.
내가 사장님의 입장이라면 그러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이 아닌 밥을 먹으러 왔다고 하더라도, 우리 집은 이만저만해서 공깃밥은 원하면 줄 수 있지만, 반찬은 나오지 않아요라고 했더라면 좋았을 터다. " 괜찮아요. 순두부찌개에 밥만 좀 먹으면 돼요."라고 했을 텐데 말이다.
"장사의 신" 우노 다카시가 말했다. "한번 온 손님이 다시 오지 않는다면 그건 전적으로 가게의 책임이야."
곱씹어 보게 만드는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