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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을 살아보니 부부라는 이름

부부싸움

by 빛해랑


젊었을 적에 부부 싸움을 많이 했다. 서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자와 여자다. 우주의 행성의 거리만큼이나 멀다는 남녀의 마음이다.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갑자기 한 공간에서 산다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도 않고, 쉬운 것이 아니다. 매일 순간마다 살아온 습관이 다른데 사랑 하나만으로 모든 갈등을 잠재울 수는 없다.



두 딸은 자신들이 어렸을 때 엄마 아빠가 하도 싸워서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다고 말한다. 아이들 앞에서 싸우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나 보다. 큰딸 유이가 얼마 전 내게 말했다.


“ 엄마 아빠 싸우는 모습 재이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마트에 데리고 가서 놀았어."



여덟 살 어린 나이에 동생을 데리고 나가 근처 마트에서 한 시간 넘게 배회하다가 들어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미안한 마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싸우지 않고 살았으면 좋았겠지만 그랬다면 우린 지금쯤 얼굴도 안 보고 사는 사이일지도 모른다.



평생 부부 싸움 한번 안 하고 살아가는 부부가 있다고도 들었다. 내겐 신기하다. 부부 싸움은 내가 남편을 이해하는 통로였다. 치열하게 싸우고 나면 ‘그래 당신은 그랬구나.’ ‘이제 조금 이해가 되네.’ 할 수 있었다. 싸우지 않고 조용히 대화로 해결하는 것이 내겐 어려웠다. 지나고 보니 부부 싸움도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싸웠던 거다. 나에겐 아이들이 있었고, 지켜야 할 가정이 있었으니까. 남편 역시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김형석의 ”백 년을 살아보니” 책을 읽고 있다. 부부란 고생도 즐거움도 함께하면서 사랑 이상의 감정이 마음속에 자리 잡는 것이다. 사랑 하나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함께했던 고생, 잘 살기 위해 싸웠던 시간이 부부라는 이름을 만들어 간다.


열심히 싸우는 부부는 이혼은 하지 않는다,


싸움도 하나의 사랑 방법인 것이다. 이혼은 사랑도 끝나고, 사랑의 싸움도 끝났을 때의 선택이다.


백 년을 살아보니



내가 백 년을 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남편보다 오래 살고 싶다. 두 딸이 어렸을 땐 친구 같은 아빠를 잘 따랐다. 커서도 한동안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했다. 남편과 딸 둘이 작당해서 엄마 놀리는 재미를 즐거워했다.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니 아빠보다는 엄마인 나와 더 잘 지내는 것이 사실이다.



남편이 점점 가엾은 느낌이다. 젊은 날에 밥 먹듯이 싸운 만큼 정이 든 것인지, 삶의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누어지고 온 탓인지는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짜증이 늘고, 말투는 꼰대 같아서 귀에 거슬리지만, 부부 싸움 덕분에 남편을 이해했다. 남편의 그늘에서 행복했고, 이제는 내가 더 오래 살아서 남편의 노후를 돌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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