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단조롭다 못해 무의미했다. 학교와 집이 내 일상의 전부였다. 엄마와의 갈등만 여전히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아버지의 술이 기어이 화근이 되고 말았다. 서리가 막 내려앉기 시작한 늦가을 오후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고구마 수확 중이던 엄마가 신발도 신지 않은 채 헐래 벌떡 집으로 막 들어오고 있었다.
"엄마 뭐야?"
"빛나야 큰일 났다. 너희 아버지가 쓰러졌단다. 병원으로 실려 갔대"
그 순간만큼은 아버지가 돌아가실 수도 있겠구나.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술 때문에 가족으로부터 인정 못 받는 아버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은 작지 않았기에.
"엄마 빨리 가. 뭐 하고 있어."
신발이 벗어진 것도 모른 채 뛰어온 엄마를 더 다급하게 몰아세웠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울면 진짜로 영영 못 볼지도 모른다는 무서움 때문에 쾅쾅대는 가슴을 누르며 무사하기만을 빌었다.
아버지는 몇 날 며칠 집에 오지 못했다. 아버지가 쓰러진 이유는 술로 인한 위 천공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위에 구멍이 날 수 있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싶다. 어쨌든 그 사단으로 아버지는 결국 술과 이별했다. 엄마는 이럴 줄 알았다느니 시원 잘했다느니 기회를 잡은 맹수처럼 틈만 나면 아버지를 찍어 눌렀지만 죽지 않고 살아준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방식이라는 걸 안다. 자신의 원죄를 반성하는 착한 아이처럼 조용히 듣기만 한 아버지가 가끔은 불쌍해졌다.
어떤 날은"아버지 술 생각 안 나?. 아주 조금은 괜찮을지도 몰라."
"허허 괜찮다. 아버지 생각해 주는 사람은 우리 빛나밖에 없구나."
아버지는 갈기를 잃어버린 사자 같았다. 이제는 더 이상 술을 핑계로 괴팍스러운 행동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동시에 우리 가족에게도 일말의 평화가 찾아왔다. 엄마의 해방감은 말이 필요 없을 만큼 컸을 것이다. 그런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 일로 집안은 조용해졌지만 알 수 없는 우울한 분위기에 나도 더 이상의 철부지 같은 행동을 멈추었다.
그 시절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엄마는 진정 술과의 전쟁이 끝난 게 행복했을까. 소리 지르던 기세 다 어디 가고 종이호랑이가 되어버린 아버지가 가여웠을까.
불과 며칠 전에 나도 유사한 일을 겪었다. 건강검진에서 남편의 혈관이 상당히 막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인공적으로 혈관에 피가 잘 돌 수 있는 시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병실에 초췌하게 앉아 있던 남편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가뜩이나 노안인 얼굴이 몇 년은 더 늙어 보이던. 더 슬픈 건 이제는 그런 일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만 큼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큰 수술을 했던 아버지와 난생처음 병원에서 2박 3일을 보낸 남편의 나이가 얼추 비슷하다. 엄마의 심정을 가늠해 보며 왜 나를 봐주지 못했냐고 따질 수가 없게 되었다. 애정의 결핍을 호소하며 반항했던 내가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은 너무나 당연했을 것이다. 왜 아니었겠는가. 엄마에게는 이미 다섯이나 자식이 더 있었지 않았는가 말이다. 안개가 걷히듯 나를 지켜낸 엄마의 흔적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