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건강 염려 때문이었을까. 엄마에게도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눈에 띄게 잔소리가 줄었다. 술만 빼놓고 보면 다정했던 아버지와의 대화가 살가워졌다. 그 외에 달라진 변화가 하나 더 있었는데 농사일 말고도 부업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까운 읍의 음식점에서 주방 일을 하거나 여의치 않을 때에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가량 집을 비우기도 했다. 이런저런 설명도 없이 “엄마 장사하러 간다. 집 잘 보고 언니 말 잘 듣고 있어. 돈 많이 벌어올게.” 반항은 줄었지만 여전히 불편한 감정이 남아 있었기에 무관심한 척했지만 그 일은 또 다른 시련의 시간이었다. 처음 얼마간은 엄마의 빈자리가 그럭저럭 괜찮았다. 잔소리도 야단맞을 일도 없어 좋기까지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 엄마가 집에 없다. “왜 아직 안 오는 거지? “ ”아버지 엄마 언제 와? “ ”글쎄다. 가져간 물건을 다 팔아야 오겠지. “ 잔소리 쟁이에 야단만 치던 엄마였지만 보고 싶어졌다. 집안일을 하며 학교에 가기 바쁜 언니는 여섯 살의 나이차 때문인지 평소에도 꼬맹이 취급하며 상대해 주지 않는 도도함이 있었다. 고등학생이었던 언니는 그 시절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문학소녀였다. 아침이면 거울 앞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부르며 갈래 머리를 따곤 했다. 오빠는 어려서부터 모든 식구와 친하지 않았다. 병약했던 탓에 늘 말 수가 적고 사는 것이 늘 상 재미없고 심드렁해 보였다. 할머니만이 늘 오빠 곁에 머물던 기억밖에 없다. 이 집에선 도무지 나란 존재는 하루 종일 마당에서 뒹구는 강아지 백구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해가 뉘엿 넘어가는 어스름한 저녁때가 되면 엄마 생각이 간절했다. 싫다고, 밉다고 밀어냈던 엄마였지만 많이 의지 했었구나! 조금씩 엄마의 사랑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 싶게 야단만 치던 엄마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려올 것 같아 눈은 대문 옆 낮은 담장 위를 떠날 줄 몰랐다. 마루 끝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는 일이 하루 일과가 되었다. 풀벌레 소리에 우울해지고, 밤하늘의 푸른 달이 외로워 보여 눈물이 났다. 별은 왜 그렇게 빛나던지....
시골의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다. 바쁜 가을 수확 시기가 끝나고 을씨년스러운 겨울이 시작되면 엄마는 어김없이 장삿길에 나섰다. 어떤 물건이었는지는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아마도 잡다한 액세서리, 주방용품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보름쯤 혹은 한 달이 지나면 어제 마실 나간 사람처럼 홀연히 들어오곤 하였다. 대개는 이모와 함께 다닌 모양인지 무용담을 들을 땐 꼭 이모이야기가 있었다.
“ 빛나야 하루는 말이다 강원도 정선을 갔어. 날은 저물어 가는데 고개를 깔딱 넘어가도 산만 있더라.”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고개 같은데 말이야? 무섭지 않았어?”
“무서웠지. 너희 이모가 달걀귀신, 처녀귀신 얘기를 하는 바람에 머리털이 마구 섰지.”
“그래서?”
“깜깜해서 앞도 안 보이는데 더듬더듬 어디만큼 가니까 집이 하나 보이는 거야. 사정 이야기를 하고 하룻밤을 재워 달라고 했지”
“재워줬어? 안된다고 하면 어쩌려고 했어?”
“고맙게도 재워줘서 천만다행이었지. 안 재워 줬으면 그 밤에 무작정 산길을 걸었겠지. 아니 그렇게 산이 많은 곳은 난생처음 봤구먼.”아침에 대나무채반을 두 개를 주고 나왔단다. “
장삿길에서 돌아오면 몇 날 며칠을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왔는지 자랑 섞인 무용담을 풀어내곤 했다. 가끔은 그 지역에서 얻은 듯 밤이나 인삼 등을 보따리 안에 넣어 온 적도 있었다. 어김없이 겨울이 돌아오면 장사를 시작하는 엄마 때문일까. 지금도 겨울이 싫다. 을씨년스러운 겨울의 냄새, 텅 빈 듯 냉기만 도는 시골집, 엄마의 빈자리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엄마의 잦은 부재 탓으로 철이 들면서 나도 언니처럼 여고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