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외에는 여전히 집안일과 농사일에 지친 엄마 모습을 보며 살았다. 할머니도 노쇠하니 종이호랑이가 되어 오히려 며느리 눈치를 보는 듯했다. 목청이 컸던 할머니는 며느리 나이 50이 넘어서야 목소리가 작아졌다. 종손 며느리에게 잘 보이려고 까지 했다. 한 동네 살던 큰 고모가 엄마에게 잔소리라도 할라치면 "너나 잘햐" 라며 되려 퉁박을 주었다. 아버지의 큰 수술 때문이었는지, 겨울철마다 돈벌이를 해서인지는 모르겠다. 덕분에 집안은 한동안 평화로웠다.
내게도 할머니의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추억이 있다. 시골의 여름밤은 더위와 모기와의 전쟁이다. 쑥풀을 뜯어다 연기를 피우고 대나무 평상에서 잠들곤 했다. 자다가 눈을 떠보면 모기를 쫓으며 부채질을 해주는 할머니가 보였다. 한참 잠들었다가 눈을 떠도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 모기를 쫓고 있었다. 긴 밤을 마치 잠도 안 자고 곁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빠만 좋아하는 줄 알았던 할머니가 내게도 사랑을 주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철들고 나서 할머니가 좋아지기 시작할 무렵 몹시 더웠던 여름에 할머니는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엄마는 슬펐을까?
점점 부끄럼 많고 소심한 여자애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루는 학교에서 야간 자율 학습 중이었다. 이미 밖은 어둑해지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반 아이들이 동시에 “비 온다.” “우산 없는데?” “집 어떻게 가지?”시골 학교는 집이 대부분 멀다. 버스로 통학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다들 비가 와도 우산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비를 맞으며 집에 가는 것이 큰일도 아니었다. 술렁이는 것도 잠시 다시 평온하게 공부를 하던 중 얼마가 지났을까. 똑똑똑! 드르륵 교실문이 열리더니 “선생님 여기가 우리 빛나교실인가요? 비가 와서 우산을 가져왔는데요.... " 수줍은 듯 옅은 미소로 얼버무리는 엄마가 서있다. 흰머리가 듬성듬성하고 고모가 장날에 사다준 티셔츠가 비에 젖은 채로. 우산 두 개를 들고 추레하게 서있던 엄마를 잊을 수가 없다. 그날 유일하게 우산을 들고 와 주었던 딱 한 사람이 내 엄마였다. 그 밤에 4킬로를 걸어서. 선생님도 당황하고 나도 당황했다. 우산만 주고 가게 하기에는 엄마 모습이 좀 그랬는지 자습은 그만하고 엄마와 함께 가라 했다. 같은 동네 사는 친구도 함께 말이다.
우산 하나는 엄마가 쓴 채 앞서 걸어가고 친구와 함께 우산하나를 나눠 쓰며 걷는 내내 엄마의 뒷모습을 봤다. 우산을 썼어도 어깨가 젖어 있다. 한없이 쓸쓸해 보이던 엄마의 어깨. 그 순간 보았다. 엄마가 아닌 외롭디 외로워 보이는 늙고 초췌한 여자를. 그토록 미워했고 야속해했던 엄마였는데 바람에 날아갈 것처럼 작고 힘없는 여자가 내 앞에서 비척비척 걸어가고 있었다.
그날을 돌이켜보면 후회가 밀려온다. 엄마랑 왜 한 우산을 쓰지 않았을까. 집까지는 40여분 남짓이어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없이 걷기만 했어도 우린 서로를 이해했을 텐데.
그 일 이후로 더 이상 엄마를 괴롭게 하는 일은 없었다. 비에 젖은 슬픈 어깨를 본 뒤로 소리 지르며 빗자루를 들던 억센 엄마가 아니었다. 약하디 약한 가여운 존재였다.
요즘딸의 불평불만을 매일 듣는다. 엄마로서 채워주지 못하는 사랑이 있나 보다. 자신의 감정을 공감해주지 못하는 엄마가 서운한 듯하다. 시작은 조용한 대화지만 끝은 서러운 눈물이다. 엄마가 딸에게 어떤 존재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왜 딸에게 똑같은 슬픔을 주고 있는 건지 화가 난다. 맑음과 흐림의 날씨처럼 우리의 관계도 일기 예보 같다. 장마도 끝났는데 비가 잦다. 우산을 보니 엄마가 미치도록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