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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공항 참사와 둔덕

종단안전구역(RESA)과 localizer

by 조성일

지난 주말(2024-12-28일) 아침, 무안공항에 동체착륙한 제주항공 소속 항공기가 활주로에 멈추지 못하고 활주로 끝에 설치된 둔덕에 충돌하여 파손되면서 폭발과 화재가 일어나 탑승객이 거의 모두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우선 이 사고로 유명을 달리 하신 179분의 명복을 빕니다.


국내외 곳곳에서 이 둔덕의 적합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이 둔덕으로 인해 피해가 커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국토부는 처음에 이 둔덕이 방위각제공시설(localizer, LZZ, LOC)을 설치하가 위한 것으로 '활주로 종단안전구역(RESA, Runway End Safety Area)' 바깥쪽에 있어서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해명했습니다.


일반인에게는 낯선 용어지만, 방위각제공시설은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할 때 조종사의 눈에 의해서가 아니라 계기의 도움을 받아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설입니다. 이게 로컬라이저입니다. 그리고 종단안전구역은 비행기가 착륙 시 활주로에 못 미쳐 활주로 앞에서 착륙하거나 활주로 내에서 정지하지 못하고 활주로를 지나서 과주(過走, overrun)하는 경우에도 비행기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설치하는 안전지대입니다.


그런데 이 종단안전지대에 설치되는 모든 시설물은 부러지기 쉬운(frangible) 구조로 만들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림 1)에서 보듯이, 구조물을 지지하는 받침대와의 연결부분을 단면이 가늘어서 쉽게 부러질 수 있는 fuse bolt등으로 설치하도록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매뉴얼은 규정하고 있습니다.


fuse bolt.png

(그림 1 fuse bolt)


종단안전구역 설치와 관련된 국내 규정인 국토부고시 '공항비행장시설 및 이착륙장 설치기준' 제21조 제4항에 따르면, "④ 정밀접근활주로의 경우에는 방위각제공시설(LLZ)이 설치되는 지점까지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을 연장하여야 하며, ... 후략"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로컬라이저가 있는 위치까지 종단안전구역을 연장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또 국토부예규 '공항비행장시설 설계 세부지침' 제18조(활주로 종단안전구역) 제2항 3호에도 같은 내용의 규정이 있습니다. "3.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의 길이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불리한 운영요건 때문에 흔히 발생되는 활주로 이전에 착륙하거나 과주한 경우를 포함하기에 충분하도록 고려되어야 한다. 정밀접근 활주로에서는 계기착륙장치(ILS)의 방위각시설(Localizer)이 통상 첫 번째 장애물이 되며,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은 이 시설까지 연장하여야 하며,... 후략". 즉, 로컬라이저까지 종단안전구역이 연장된다는 뜻입니다.


2024년 12월 31일 국토부 브리핑 중에 기자들이 이 문제를 지적하니까, 국토부 실국장의 답변이 '~까지"가 영어로 "up to"인지 "including"인지를 따져보고 답변하겠다고 즉답을 피했습니다. 로컬라이저가 설치된 둔덕이 국내외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었음에도 국토부 자체의 고시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한편으로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어떻든 그래서 원문을 살펴봤습니다. 국토부예규 '공항비행장시설 설계 세부지침'은 ICAO의 설계매뉴얼을 거의 그대로 베껴서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ICAO의 Aerodrome Design Manual'의 규정을 살펴봤습니다.


ICAO Design Manual Part1. Runways Chap5. 5.4.6:
"On a precision approach runway, the ILS localizer is normally the first upstanding obstacle, and the runway end safety area should extend up to this facility. In other circumstances, the first upstanding obstacle may be a road, a railroad or other constructed or natural feature. The provision of a runway end safety area should take such obstacles into consideration."


위에서 보듯이, 'up to'로 되어 있네요. 그러면 국토부 얘기대로 로컬라이저는 종단안전구역에서 제외되는 걸까요? 글쎄요. 뒷부분에 '그 장애물들을 고려해야 한다(take such obstacles into consideration)'라고 보완 설명된 부분도 잘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규정은 후술하듯 이 부분도 '장애물까지 연장'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내 규정에는 또 하나의 '~까지'가 있는 겁니다. 이것도 같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ICAO 매뉴얼 상 원문의 앞뒤 문맥과 조문의 취지로 봐서는 로컬라이저나 도로, 철도 등의 장애물이 있을 경우 이들 장애물이 비행기의 안전확보에 저해되지 않도록 충분히 고려해서 종단안전구역을 결정하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활주로등 시설의 위치를 조정하거나 또는 그 장애물을 고려해서 그 앞에 EMAS(항공기 이탈방지 시스템) 등을 설치할 수도 있겠지요.


반면에, 국내 규정(상기 설치기준 4항 후단)은 "...전략... 도로 등 불가피한 장애물로 인하여 제1항의 규정을 충족시킬 수 없을 경우에는 해당 장애물까지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을 연장하여야 한다"고 바꾸어 규정하고 있습니다. ICAO 매뉴얼 원문에는 없는 밑줄 부분이 추가되면서 이때의 '~까지가' 마치 그 장애물 직전까지만 종단안전구역을 설치하면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연장'이라는 표현이 있어서 앞뒤가 안 맞기도 합니다. 국내 규정처럼 도로 등 장애물이 있어서 종단안전구역의 길이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여 기준에 못미치게 되면 '연장'이 아니라 '축소'할 수 있다가 맞는 표현 아닐까요.


국내규정 중 '세부지침(상기 18조 후단)'에는 이 부분이 "... 전략... 다른 상황(비정밀 또는 비계기 접근 활주로)에서는 직립해 있는 첫 번째 장애물이 도로, 철도 또는 기타 인공 또는 자연지형이 될 수도 있으며, 그런 상황에서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은 장애물까지 연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 내용이 조금 다릅니다.

즉, 설치기준의 규정과는 달리 과주한 비행기가 마주치는 첫번째 장애물이 도로, 철도 등이 될 수 있는데, 이들 장애물까지 종단안전구역을 연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설치기준의 내용과 달리 도로, 철도 등의 장애물이 나타나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 오히려 이들 장애물까지 (포함해서) 종단안전구역을 지정하고, 그 도로와 철도 등의 부속시설물도 부러지기 쉬운 형태로 만들라는 뜻으로도 보입니다.


영영사전(https://dictionary.cambridge.org)도 찾아 봤습니다. 'up to'의 영어 뜻은 "less than or equal to, but not more than, a stated value, number, level, or time"입니다. 'equal to'가 들어가 있다는 점에 유념했으면 합니다. 국토부가 생각하는 up to였다면 '바로 직전까지'라는 표현으로 했어야 훨씬 더 명확합니다. 여기에서의 '~까지'는 그 시설까지(포함해서)'라고 해석해야 타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ICAO 매뉴얼 중 5.4.7은 "A study of the ADREP data on runway overruns suggests that the standard distance of 90 m would capture approximately 61 per cent of overruns, with 83 per cent being contained within the recommended distance of 240 m. Therefore, it is recognized that some overruns would exceed the 240 m RESA distance. Accordingly, whatever length of RESA in excess of the standard is provided, it is important to ensure that the likelihood of, and potential impacts arising from, an overrun are minimized as far as reasonably practicable."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을 살펴 보면, 종단안전구역의 연장이 90m일 때는 과주(overrun)한 비행기의 61%, 240m일 때는83%가 그 구역내에서 정지하고, 따라서 이 기준보다 길게 설치하는 경우에도 과주 가능성과 그로 인한 잠재적 피해가 가능한 최소화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종단안전구역 바깥쪽이라고 하더라도 가능한 과주 항공기에 피해를 줄 수 있는 견고한 고정물을 설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뜻합니다.


요컨데, 종단안전구역 외의 시설이라 견고한 콘크리트 구조물에 흙으로 둔덕을 만들어도 무방하다는 국토부의 해명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습니다.


재난 초기, 누구든 당황하고 우왕좌왕할 수 있습니다. 비록 행정경험이 많은 엘리트 공무원들이라고 해도 경험이 없는 엄청난 재난이 닥치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빨리 정신차려서 재난 대응의 큰 그림(big picture)과 함께 세부사항(details)까지 챙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응에 실패하거나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상실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국토부의 초기대응은 수준 이하고, 낙제점입니다. 이제라도 정신차려서 모든 규정을 빨리 파악하고 순리대로 조치했으면 합니다.


항공사고에는 큰 전문성이 없는 저도, 관련 규정을 하나하나 다 찾아봤습니다. 제가 살펴본 규정은 국내의 여러 공항들에 잘못 설치된 콘크리트 구조물과 둔덕은 하루라도 빨리 제거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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