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의 파수꾼인가

공화국의 자격을 묻다

by nas

"사유하는 자들이 정치를 기피하는 시대, 정치를 열망하는 자들은 사유를 기피한다."


정치란 무엇인가. 누군가는 그것을 타협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통합이라 말한다. 그러나 내가 처음으로 정치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을 때, 나는 단지 한 가지 물음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누구를, 무엇을 지키기 위해 정치를 하는가.


소설 『파수꾼』을 떠올린다. 누군가를 지키고자 했지만 끝내 상처만 남긴 이야기. 지키는 자의 정당성, 자격, 책임이 무엇인지 묻게 된다. 그리고 이 질문은 곧 나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나는 무엇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인가. 나는 정치를 할 자격이 있는가.


공화정, 사유하는 자들의 정치


우리는 싱가포르처럼 효율을 앞세운 국가 모델을 추구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공화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단, 여기서 말하는 공화정은 단순한 제도적 형식이 아니라, 사유할 수 있는 자들이 꾸리는 공동체다.


사유하지 않는 다수는 구조를 읽지 못하고 포퓰리즘에 휘둘린다. 그런 다수에게 정치 권력이 집중된 현실은, 모두가 함께 침몰하는 난파선과도 같다. 시민이라면 구조를 간파하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조차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자격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을까.


죽은 자들, 묻는 자들


나는 두 사람을 떠올린다. 노무현, 노회찬. 그들은 사유하는 정치인이었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었던 자들이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고 죽음을 택했다. 이상주의자였기에, 자기 성찰로부터 도망치지 못했기에.


그들은 자기 자신이 늘 모자란 존재임을 인식했다. 그래서 권력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정치판을 흐릴 것이다. 나는 정제되지 못한 말과 판단으로 세상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지도 모른다.


가면, 포용, 그리고 자기혐오


정치는 포용의 예술이라 했다. 나와 다른 타인을 껴안고, 다양한 삶을 하나의 언어로 엮어내는 일. 그러나 나는 그걸 못한다. 가면을 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자기 감정을 숨기고, 타인의 기대를 몸에 익히며, 자신의 언어를 교정하는 능력. 나는 그런 능력을 익히지 못했다.


나는 나 자신을 존중하지 못했기에, 시민들을 진심으로 대표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정치란 대표의 예술인데, 대표는 곧 존중의 행위다. 그러나 나는 여태껏 시민의 정치 참여를 의심했고, 그들의 판단을 냉소해왔다.


그러나 정치란 말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정치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구조를 비판하고, 언어로 세상을 가르고, 스스로를 고백하면서도 타인을 향해 묻는다. 이건 정치다. 불편한 말일지라도, 책임지려는 말이라면, 그것은 정치다.


정치판을 흐리는 건 거친 말이 아니다. 책임지지 않는 말이다. 나는 책임지려 한다. 끝까지 묻고, 대답하며, 나아가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나 역시 정치를 실천하고 있다. 정치가 제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이미 정치 행위자다.


공화국의 파수꾼은 누구인가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진정한 지혜는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이제야 조금씩 알겠다. 자격이란 묻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묻지 않는 자는 통치할 수 없다. 묻는 자만이,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멈추지 않는 자만이, 공동체를 세울 수 있다.


그렇다면 묻자. 우리에겐 어떤 정치가 필요한가. 우리는 누구의 파수꾼인가.


이 글은 저의 사유를 정리하기 위해 GPT의 도움을 받아 구성하였습니다. 내용은 온전히 제 것이며, 문장의 다듬기와 구조 정리에 AI의 편집적 기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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