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
신-세대(新世代)
뜬금없다. 낙태와 연금개혁의 궤(軌)라니.
낙태법과 연금개혁은 언뜻 보면 공통점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근본적인 골자를 생각한다면 이 둘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있다.
낙태법에서 말하는 태아란 누구인가?
의학적으로 임신 중인 여성의 자궁 내 생명은, 임신 2~8주 동안 기관 형성이 이루어지는 '배아기'와, 임신 9주부터 기관의 성장이 이루어지는 '태아기'로 구분된다.
법은 이러한 의학적 구분을 차용하되, 실질적으로는 자궁 내 착상 여부를 기준으로 낙태법 적용 여부를 판단한다. 따라서, 배아기라 할지라도 자궁에 착상된 이후라면 낙태법의 적용 대상이 된다.
태아는 모체의 뱃속에서 인간의 형체를 만들어가는 그들의 자식인 것이다.
그렇다면, 산모의 권리와 태아의 권리는 부모와 자식의 권리로 볼 수 있으며, 이를 확장하면 결국 낙태는 기성세대(旣成世代)와 신세대(新世代)의 일방적인 대립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연금개혁을 보자.
연금개혁은 표면적으로 현재 존재하고 있는 기성세대(旣成世代)와 신세대(新世代) 갈등인 것 같지만, 사실 본질적으로는 존재하는 이들과 존재하지 않는 이들의 대립이다.
현재 우리 세대는 연금 개혁에 목소리를 내며 그것에 대한 의사표현에 자유롭다.
가령 올해 3월 연금 모수 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 젊은 국회의원들이 당적불문하고 연대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허나 미래세대는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그들은 현재 존재하지 않으니까.
결국 이 법과 개혁은,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할 이들과 존재하는 이들의 기울어진 운동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