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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내 세상이 무너졌어

거짓된 토대 아래 쌓은 성은 모래성

by nas

어젯밤은 꽤나 무난한 밤이었다.


정해놓은 공부와 운동을 끝냈고 개운하게 몸도 씻었다. 그리고 누워 다음 주에 가게 될 서울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까지. 모든 게 루틴대로였다.


사건은 뜬금없는 곳에서 터져 나왔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려고 그 주변 지도를 살피던 중 그 앞에 있는 아파트를 발견한 것이다.


화면 캡처 2025-05-17 171936.png


왜일까. 나는 눈물이 났다. 그것도 펑펑. 대관절 눈물이 왜 났을까.


아마도 부러웠던 것 같다. 아니, 부러웠다.


나는 시골에서 산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물론이고 영화를 한 번 보려면 하루를 통째로 잡아야 했다. 그런데 저기 사는 내 동년배들은 어떤가. 박물관에 가고 싶으면 그냥 가는 거였다.


내가 그곳에 가는 것과 그들이 그곳에 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였다.




나의 채무가 떠올랐다.


국가와 나의 계약 관계상 국가가 나에게 복지라는 채권을 주며 부여한 채무말이다.


과거에 복지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에 살았던 사람들과 현재 그런 복지를 받지 못하는 다른 나라의 동년배들을 생각하면, 나의 채무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런 나의 채무는 박물관 앞에 사는 나의 동년배들과 비교하면 꽤나 초라한 것이었다.


물론 이런 것을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꽤나 유치하고 이치에 안 맞는 것일 수 있지만 서도, 그동안 내가 내 아래만 보아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항상 아래와 나만을 비교했던, 위와 나를 비교하지 않았던 나의 모순이, 아니 사회에 대한 나의 순응이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고통스럽게도, 이 순응은 나의 채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나는 학자를 꿈꿨다. 사회개혁의 이념적 발판을 마련하는 그런 학자가 되기를 꿈꿨다.


나는 내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사회가 개인들에게 걸어놓은 순응과 복종에 속박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한 생각이만이 나를 이루는 기둥이었고, 자부심이었다.


시골 깡촌에 살고 재정적으로 윤택하지 못한 집안 아이가, 도시에 살며 재정적으로 여유로운 동년배들과 비교해 더 나은 점은 그것뿐이니까.


그런데 그 깨어있음이 결국에는 사회에 대한 고도한 순응을 전제로했다면 어떻겠는가?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내 동년배들과 다를 바 하나 없는 그저 인간이라는 걸.


오히려 그들이 나보다 더 우월하다는 걸.


그들은 내가 하지 못한 경험과 더 높게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나는 패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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