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중독 두 달의 역사
한 해의 1/6이 되는 기간동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바빴다, 라는 말은 핑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11월은 무엇을 했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고, 그렇다고 딱히 남은 취직 준비의 흔적도 없습니다. 그저 떨어질 것이라 확신이 드는 자격증 시험에 대한 기억이 남았을 뿐입니다. 시험을 열심히 공부했다고 단언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저에 대한 기준이 낮은 편이라 조금이라도 했다면 '열심히 공부했는데 아쉽다'라 말했을 텐데. 공부의 방향도, 속도도 뭐 하나 충족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이미 시험장에 도착해 교재도 집어넣은 다음이었습니다. 가끔 제가 하는 멍청한 선택이 있습니다. 이도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제 우울은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자격증 시험 하나 제대로 준비 못한 채로 시험은 다가오고, 9월 공채 이후로 제대로 넣은 곳도 없고, 루틴처럼 하던 OPIc 공부는 포기에, 언어 5분 공부도 그 연속을 깨뜨린지 오래였습니다. 이제 진짜 제대로 삶을 살아야지, 하는 각오는 이틀 이상을 가지못했습니다. 저는 그 상태로 게임 중독에 걸렸습니다.
게임 중독이라 해서 심각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말의 표현이 그러했을 뿐이지 제가 새끼손가락만큼의 인내심이라도 있었다면 중독은 금방 깨져버렸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매일같이 게임을 시작했고, 몇 십 시간이 늘어난 플레이타임을 보고 좋지 않은 기분으로 게임을 즐겼습니다. 이 좋거나 나쁘거나 한 가지만 하지 않는 애매모호한 생각들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모두가 나처럼 이렇게 인내심 없이 살지는 않을텐데. 열심히 일을 갔다오는 가족들을 보면서 돈을 쓰는 자신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열심히 손가락은 배달 앱을 찾아 먹고싶은 것을 강제로 선택했습니다. 12월이 시작되는 날 시험을 보고 나와 눈물을 간신히 참으며 시험 장소에서 저희 집까지 이어지는 30분 정도의 산책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육교를 건널 때는 마치 그 육교가 무너져 차들이 달리는 도로로 날 떨어뜨릴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상황에도 가족들과 함께 칼국수를 먹으러 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언제쯤 내가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하며 새벽 4시에 잠을 청하던 나날들을 멈추려 저는 어느 날 밤 9시에 잠이 오는 저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10시쯤 누워 잘 준비를 했습니다. 보통 한 시간 이상은 핸드폰을 해야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저에게도 습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은 12월 3일이었습니다.
그날 국회 앞으로 모인 사람들을 존경하는 것은 제 삶에서 절대 변하지 않을 사실일 것 입니다. 저는 뉴스를 보자마자 가족들이랑 얘기를 한 후에 굳이 나갈 일이 없도록 스터디 일정을 취소했습니다. 동생의 생일 파티도 가지 못하겠다 말했습니다. 그리고 새벽까지 뉴스를 보며 계엄 해제 가결까지를 기다렸습니다. 많은 생각이 뇌를 스쳐갔습니다. 영화 <화려한 휴가>와 드라마 <오월의 청춘>에서 본 폭력의 장면들, 그리고 국회에서 들었던 5.18 성폭력 피해자들의 증언, 시사 프로그램들에서 조명하던 끔찍한 살인들. 불안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마치 그 순간이 쉴 새 없이 제일 싫어하는 종이에 베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그 전까지 했던 말들을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 말들을 누군가 찾아내서, 나를 데려가는 것도 무서웠지만, 내 주변 사람들을 데려가는 것 또한 두려웠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바로 이 곳에 쓸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이 생각들은 털어내기 딱 좋은 깊고 어두운 생각들이었는데, 탄핵이 확정되지 못한 지금까지도 쓰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토요일마다 집회를 나갔습니다. 긴 시간을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곳에서 불안해하는 것이 나만 이 아니고, 내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갈 수 있었습니다. 싸우면서도 이 문제에 함께하는 사람들을 보며 웃기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가면 다시 저는 새벽 4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언제 사이렌이 울릴지, 어떤 큰 소리가 날지 불안해하며 감았던 눈을 다시 뜨기를 반복했습니다.
14일, 가결의 순간을 시위에 온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가, 이(백사표)". 뒤의 세 글자가 들리기도 전에 이로 시작하는 순간 제대로 구호도 외치지 못하던 사람은 환호의 비명을 질렀습니다. 다시 만난 세계를 조금은 젖은 목소리로 부르며 돌아가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 타는 곳 앞에서 1시간을 기다렸는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헌법 재판소로 넘어가고, 가결이 무의미하게 기각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바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탄핵이 가결되었다는 기쁨과, 기각될 수 있다는 절망에 일주일 동안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던 게임을 다시 키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원래는 게임을 키려 노트북을 켰던 것이나,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가족들이 들어줄 수는 있지만, 모두 듣기에는 지루하고, 친구들에게 하기에는 재미없을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올린다고 해도 아무도 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치 광장에 나가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여기에 제 한탄이자, 취업 준비를 하지 못한 변명을 늘어놓고 싶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끝나고, 다시 제가 취업 준비에 불안해하길 바랍니다. 혐오로 독재를 시도하던 사람들과 이에 동조하던 사람들 모두가 죄값을 받길 바랍니다. 12월의 반을 허공에 날려버린 백수의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