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고백합니다 10

욕심이 바다를 이루는 사람

by 산넙치

이공계열 대학을 나왔고, 목표는 프로그래머 취직인 저는 초등학교,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예술을 꿈꾸던 인간입니다. 왜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진 않습니다. 피아노를 치다 그만 두고,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졌는데,왜 만화가 아니라 그림을 그린다고 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은 예고 입시에서 떨어진 것이 잘 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직 저한테는 미술에 대한 미련이 남았는지,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른채 성인이 되어서도 문구점이나 다이소에서 미술 용품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유튜브가 한 몫했다고 봅니다. 딥펜을 쓰는 모습이나, 싸고 작은 팔레트로 그림을 그리는 영상들을 보면서 저고 저렇게 하고 싶다 생각한 것 같습니다. 웃긴 것은, 아이패드로 이런 그림들을 그릴 수 있는 프로크리에이트도 샀다는 겁니다. 클립 스튜디오도 예외는 아닙니다. 가끔 엄청 유치한 만화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어하는 것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한동안 유튜브 쇼츠를 점령했던 보석 십자수도 책장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완성된 것은 추레하게 문 밖을 지키고 있습니다. 친구가 같이 하자 꼬셨던 모루 인형들은 서랍 구석에서 그 형태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어제는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요즘 캐릭터 디자인 문구가 인기도 많고 이쁘니, 관련 영상도 보고 저 만의 캐릭터를 디자인해보기도 했습니다. 사실 어제가 생일이라, 생산적이지 않은 일을 하고 싶었어요. 이모티콘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며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답니다. 원래 취업을 해야하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해요. 수능 전날에는 벽만 봐도 재밌다, 이런 말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취업을 하고 나서도 이렇게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 저것 하고 싶어하는 것이 저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은 다이소에서 좋아요 도장 하나와 회색 고양이 바느질 세트를 사왔습니다. 말했잖아요. 저는 이것 저것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몇 달 전부터 인형뽑기에 빠졌는데, 인형에 붙어있는 못생긴 메이커 상표를 떼는 것을 시작으로 바느질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코뜨기? 그건 이미 찌그러진 코스터 6개를 짜고 난 뒤에 처박아둔 상태에요. 조만간 꺼낼 것 같아요.


다이소에서 천 원짜리 만들기 세트를 하나씩 사오고, 떼부자가 된 저를 상상하며 그림을 그릴 때마다 저는 참 욕심이 가득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엔 강을 이루는구나.. 했는데, 강이 아니라 바다였어요. 양날의 검같은 저의 면입니다. 돈을 벌지도 않고, 공부도 하지 않고 모든 걸 찍어먹듯이 손가락 끝만 담근다면 아무것도 되지 않을거에요. 그치만 언젠가는 하나를 골라 제가 들어갈 수 있는 만큼은 팔 수 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이런 망상은 제 휴식이자, 미래에 대한 기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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