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반에 떠나는 파리 유학 14

와인의 숙성

by 신경한

"경한아. 이 샴페인 어느 정도 레벨이니?"

서울아산병원 변정식 교수가 카톡으로 물어왔다. 2002년 빈티지 샴페인. 누군가 선물했다고 생각하고 아주 훌륭한 거라 답장을 보냈더니, 딸 탄생빈이라 살까 말까 고민 중이었는데 그럼 사겠다고 답장이 왔다.

"살 거면 안 사는 거 추천"

"앗.. 왜?"

"오래된 빈티지라 보관 상태가 안 좋을 가능성이 아주 높음. 샴페인 말고 레드 알아보는 거 추천."


(먼저 약간의 설명. 샴페인은 다른 와인과 달리 여러 해 포도를 함께 섞는데, 같은 해 재배한 포도로만 만든 것을 빈티지 샴페인이라고 한다. 탄생빈은 자신이나 가족이 태어난 해와 같은 와인. 생일이나 결혼, 합격 등 축하할 일이 있을 때 마시기 위해 미리 구입해 보관하곤 한다.)


와인의 숙성은 기본적으로는 산화, 사람의 노화와 비슷하다. 아주 천천히 산화되어야 우아하게 숙성되는 것도. 레드와인은 항산화제인 탄닌과 폴리페놀이 풍부해서 화이트 와인이나 샴페인보다 장기 숙성에 유리하다(고들 생각한다). 사실 나에게는 그 전날 경험도 영향이 있었다. 우리 아이들의 탄생빈인 1999년과 2000년 레드와인을 시음했는데 너무 훌륭했기에.


그런데 다음날 맥심 선생님한테 물어봤더니 고개를 갸우뚱. 샴페인은 병 안의 기압이 높아 산화 위험성이 적고, 특히 빈티지 샴페인은 장기 숙성이 가능하다고. 그리고 2002년 보르도 레드와인은 날씨가 아주 안 좋은 해여서 추천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바로 다시 카톡을 보냈다.


와인의 숙성은 병에 담기기 전과 후로 나뉜다. 우리말로는 모두 숙성이라고 하지만 정확하게는 병입 전은 maturation, 병입 후는 aging이다. 오크통 등에서 새로운 향을 받아들여 기존의 모습보다 발전하고 있으면 maturation 숙성이고, 병에 담긴 후 새로운 것 습득 없이 그냥 산화되고 있으면 aging 나이듬이다. 역시 사람과 비슷.


그래서 오래된 빈티지 와인을 구입할 때는 병입 후 보관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 병입 후 잠시라도 보관이 잘못되면 확 나이 들어 버리기 때문에.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잘 보관되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거의 없다.


보다 안전한 선택은 스위트 와인. 다른 음식에서처럼 당이 높으면 시간이 지나도 거의 산화되지 않는다. 많이 마시기 힘든 게 오히려 장점일 수도. 의미 있는 날 여러 사람들이 함께 마시며 축하할 수 있기에.


우리 집 셀러에는 장기 숙성에 적합하지 않은 아이들 탄생빈 와인들이 있다. 내가 와인을 잘 모를 때 저렴해서 구입한 것들. 앞으로도 마시지 않고 그냥 쭉 보관할 생각이다. 사실 아이들 탄생빈은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와인은 코르크를 열기 전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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