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반에 떠나는 파리 유학 13

랑그독 와인과 지구 온난화

by 신경한

르꼬르동 블루 와인 프로그램에는 한 번의 와인 수확 체험과 네 번의 와인 산지 방문이 있다. 보르도, 부르고뉴, 샴페인 지역은 아주 중요하기에 꼭 방문하고 나머지 한 곳은 해마다 달라진다. 올해는 프랑스 남부 랑그독 지방.


바다에 연해 있는 픽풀 드 피네 지방의 도멘 펠린 조르단을 방문했다. 펠린과 클라우드, 엄마와 딸이 픽풀 포도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곳이다. 일단 전망이 너무 좋다. 아, 제주 생각이 난다. 이쪽은 광치기해변 같고, 저기는 도두봉 같고.

와인 테이스팅을 하는데 여기 해변의 특산품이라고 생굴을 함께 준비해 주었다. 신선한 픽풀 와인과 생굴이 너무 잘 어울렸다. 펠린이 지구 온난화로 포도 수확이 점점 힘들어진다고 이야기한다. 신선함을 유지해야 하기에 요샌 새벽 2시부터 한밤중에 수확한다고.


다음날 생 시니앙 지역의 라 만두라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아주 깔끔한 건물에 내부는 미니멀리즘 인테리어. 오너 부부 역시 약간 선불교 느낌이 난다. 7년 전 환경친화적인 와인 철학을 가지고 페샥 레오냥에서 여기로 이주했다고. 다만 자신은 유기농 인증 등에는 연연하지 않는다고 한다. 요새 인증이 너무 마케팅 위주로 변질된 것 같다고.

와인도 화이트와 레드 각각 두 종류씩. 하나는 가볍고 신선하게, 다른 하나는 묵직한 스타일로. 시음해 보니 역시 군더더기 없이 딱 떨어지는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무알콜 와인을 시음했다. 미래를 보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아직은 그냥 좀 떫은 베리 주스 느낌이다. 와인에서 알콜성분만 빼면 될 것 같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다. 향과 맛을 결정하는 폴리페놀 같은 많은 물질들이 알코올에만 녹기 때문에.


라클라프 지역의 샤또 라 네글리로. 지구 온난화로 와인 생산이 줄어들어 너무 걱정스럽다고 한다. 물 부족 문제가 가장 심각한데 특히 시라가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올해 처음으로 화이트 와인을 만들 때 포도를 세척했는데 결과가 어떨지 모르겠다고 한다. 비가 거의 안 와서 포도 껍질에 이물질이 너무 많았다고. 원래 와인을 만들 때 포도를 세척해서는 안된다. 포도 껍질에 발효를 담당하는 효모가 붙어있기 때문에.

준비한 시음을 마치고 매니저가 특별히 오크통에서 숙성 중인 자신들의 최고급 와인 La porte du ciel, 천국의 문을 시음할 수 있도록 해주겠단다. 36개월 숙성 예정인데 이제 10개월째라고. 와인을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면 매년 5% 정도가 증발해 없어지는데 이를 Angel's share, 천사의 몫이라고 한다. 우린 천국의 문에서 천사의 몫을 몰래 훔쳐 마시는 셈. 아직은 탄닌이 많이 강하지만 3년 후에는 멋지게 숙성될 것 같다.


마지막날 아침 코르비에레 지역으로 가는데 도로 양쪽으로 산불피해 흔적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올 7월에 난 산불이라고. 몇 년 새 기후도 더 건조해지고 바람도 강해져서 피해가 엄청났다고 한다. 이 지역이 고향인 맥심이 멍청한 얼간이 때문이라고 너무 안타까워한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실수만일까? 이런 기후 변화를 만든 우리 모두의 책임 아닐까?


어제저녁식사 중 스마트폰 초기 화면 이야기가 나왔었다. 카를로스 폰의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찍은 지구 사진이 가장 멋있다고들 해서, 내가 pale blue dot을 이야기했다. 반고흐 '가세 박사의 초상'과 함께 걸려 있는, 내 진료실 사진을 보여주면서.


1990년 나사의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기 직전, 카메라를 돌려서 찍은 지구. 태양계 끝에서 바라본 지구는 희미한 푸른 점에 불과했다. 이 먼지같이 작은 점에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한평생을 보냈다. 우리의 기쁨과 고통도, 사랑과 증오도, 문명과 전쟁도 결국 이 작은 점에 존재했을 뿐.

랑그독을 포함해 지구 곳곳이 기후변화로 고통받고 있는 지금. 우리의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하고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칼 세이건의 외침에 우리 모두가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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