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반에 떠나는 파리 유학 16

파리의 추수감사절

by 신경한

와인 과정 학생 8명 중 네 명이 미국인이다. 그중 은퇴한 내과의사인 토머스가 집으로 모두를 초대했다. Thanksgiving을 기념해서 Friendsgiving 모임을 하자고.

센강변에 붙어 있는 아파트 6층. 엘리베이터가 정말 작다. 집안에 들어서니 토머스와 아내 몰리가 반갑게 맞아준다. 아이들이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 너무 고맙다고 말한다. 포장지랑 매듭이 너무 예뻐서 보관해 두었다고 서랍을 열어 보여준다. 곧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건대 그때 장식으로 쓰겠다고.

맥심 선생님은 중요한 가족 모임이 있다고 했는데 일부러 빠져준 것 같기도. 조지는 당일까지 단톡에 답글을 올리지 않았고 학생들 중 유일하게 불참. 다들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며 그동안의 여러 가지 불만을 이야기한다. 얘네들도 앞에선 친절하지만 뒤에선 장난 아니구나.

모두가 조금씩 음식을 준비해 왔고 하이라이트인 칠면조는 르꼬르동 블루 요리 과정을 마친 후안이 자신의 실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우린 떡볶이를 준비했다. 비건인 애니카를 위해 어묵이 안 들어간 떡볶이를 따로 준비했는데 정화에게 너무 고마워한다. 김과 햇반도 가져가고. 한인마트에서 산 막걸리와 아이들이 한국에서 가져온 꿀약과, 우리 선생님과 이름이 같은 맥심 커피도. 맥심커피는 한국 스타일의 달달한 인스터트 커피라고 설명했더니, 다들 맥심 선생님도 좀 더 스위트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요새 너무 예민하긴 하다. 100일 안된 아이를 보느라 그런 거니 이해해 주자고 했다.



와인도 각자 한 병씩. 지난주 출시된 보졸레 누보가 있어 공부 삼아 마셔보는데 역시 별로다. 켈리가 가져온 와인이 가장 좋아 물어보니 시음회 장에서 내가 쏟은 바로 그 와인이라고 하며 웃는다. 옆에 있던 후안이 와인을 쏟은 건 자기가 먼저라고 한다. 르꼬르동 블루 130주년 기념행사에서.

다들 좀 매울 텐데도 떡볶이를 잘 먹는다. 중간에 토머스가 막걸리를 가져와서 한잔씩 따라준다. 흔들어 마시는 것 아니냐는 토머스에게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난 가라앉혀 마시는 걸 더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다. 3일 동안 racking 했다고 하니 다들 한바탕 웃는다. (Racking은 와인 양조과정에서 찌꺼기를 가라앉혀 맑게 만드는 과정이다.)


후안의 여자친구 한나는 우리가 디저트로 가져온 약과를 너무 좋아한다. 정화가 몰래 두 개를 챙겨 주니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고맙다고. 자긴 슬로베니아 출신인데 수도인 류블랴나가 정말 아름답다고 꼭 한번 와보라고 한다. 우리는 독재자로 알고 있는 티토를 슬로베니아 사람들은 아직도 존경한다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나중에 역사를 한번 살펴봐야겠다.

옆집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라고 몰리가 말한다. 하루 종일 아기 울음소리와 아이들 뛰는 소리가 들리는데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고 당연히 여긴다고. 토머스가 내 이야기를 하며 그래도 나가라고 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하니, 모건은 계약하자고 해서 나간 자리에서 이유도 모른 채 거부당한 이야기를 한다. 다들 타지에서 이런저런 사연들이 있다.

음식과 와인, 학교 이야기 속에 어느새 헤어질 시간. 초대해 준 토머스에게 고맙다고 하니 우리가 준비한 한국음식들 덕분에 더 의미 있는, 잊지 못할 추수감사절이 되었다고 자기가 더 감사하다고 한다. 몰리가 프랑스식으로 인사하자고 해서 난생처음으로 비주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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