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프랑스 와인 대상
매년 초, 라 르뷔 뒤 뱅 La revue du vin이라는 유명 와인 잡지에서 주최하는 프랑스 와인 대상 행사가 있다. 올해의 인물, 와인, 생산자 등 7개 분야에서 수상자를 선정해 시상한다. 장소는 프랑스 오토모빌 클럽. 파리 한복판, 콩코르드 광장에 바로 붙어있는 회원 전용 프라이빗 클럽이다.
시상식 후 가장 커다란 홀에서 와인 만찬이 있다. 와인은 수상자와 파트너로 참여하는 크룩 샴페인, 보르도 와이너리가 제공하고. 르꼬르동 블루는 와인 서빙을 담당한다. 물론 스탠딩 파티다. 다들 와인잔 하나씩 들고 인사하고 소개하고 대화하는 분위기. 음식도 핑거 푸드.
학생들 모두 부스 하나씩을 맡아야 한다. 맥심이 다들 선호하는 보르도를 나에게 맡겼다. 준비하는 안쪽 방에 들어서는데 와, 다 보르도 최상급 그랑크뤼다. 그것도 전부 일반 와인병 두 배 크기인 1.5리터 매그넘. 이건 주로 행사나 기념일에 사용된다. 보기에도 근사하고 와인 숙성도 더 잘 되기 때문. 작은 냄비보다 큰 솥에 끓인 찌개가 깊은 맛이 있는 거랑 비슷한 것 같다. (비유가 좀 그런가?) 조심스럽게 코르크를 오픈하고 하나씩 시음해 본다.
샤토 뒤포르 비방 2017, 샤토 브란 깡트낙 2012, 샤토 몽로즈 2015, 샤토 베이슈벨 2017, 샤토 린치 바주 2014, 샤토 피숑 바롱 2008.
마고 지역의 뒤포르 비방과 브란 깡트낙은 우아한 바이올렛향이 너무 좋고, 생줄리앙의 베이슈빌은 보르도 치곤 확실히 탄닌이 부드럽다. 생테스테프 몽로즈는 아직 탄닌이 강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고. 뽀이악 린치 바주와 피숑 바롱은 정말 탄탄하다. 특히 피숑 바롱 2008은 이제 정점에 있는 듯. 밸런스가 정말 좋다. 세월이 주는 원숙함도 느껴지고.
가장 유명한 디저트 와인인 샤또 디캠도 와인 냉장고에 있단다. 이건 제로보암이라고 하는 3리터. 맥심과 함께 코르크를 오픈하고 시음해 보았다. 탄탄한 산미 때문인지 그렇게 달지 않다. 향도 아주 복합적이고.
본 행사 시작 전에 모두 같이 돌아다니며 서로가 담당한 와인을 시음해 본다. 먼저 후안이 맡은 샤토 몽투스. 강한 탄닌으로 유명한 타나트라는 포도로 만든 와인. 2008 빈티지에 디캔팅을 2시간 가까이하였는데도 아직도 입안에서 탄닌의 떫은맛이 강하다. 켈리가 맡은 샤토네프 뒤 파프. 내가 시음해 보고 그리나슈가 50% 정도일 거라 하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짝 놀란다. 55%라고. 다음은 작년 졸업생 조시가 담당한 크룩 샴페인. 3리터 제로보암은 처음 마셔본다. 역시 향과 구조 모두 밸런스가 아주 좋다.
드디어 만찬 시작. 호텔 직원 한 명이 도와주기로 해서 난 디캠과 린쉬 바주, 몽로즈, 피숑 바롱을 맡기로. 역시 디캠이 가장 인기다. 3리터짜리 병을 들고 조금씩 따라 주는 게 만만치 않다. 보르도 레드도 많이들 찾고.
올해의 인물로 뽑힌 NBA 샌안토니오 스타플레이어 토니 파커도 왔었다고 한다. 은퇴 후 이제 와인 생산자로 변신했다고. 자신의 와인 부스에 이십 분 정도 있었다던데 난 정신없이 바빠서 나중에서야 알았다.
들리는 건 오직 불어뿐. 영어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무슨 와인을 원하는지는 눈빛과 제스처로 거의 알 수 있다. 내게 물어보는 건 거의 와인의 생산 연도. 이건 내가 불어로 이야기해 줄 수 있다. 대부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라 병 라벨의 연도가 잘 안 보일 듯하다.
나에게 세 종류 보르도 와인을 어떤 순서로 시음하는 게 좋은지 묻는 사람도 있다. (물론 처음에는 전혀 못 알아 들었다.) 영어 불어 섞어가며 내 생각을 이야기해 주었다. 탄닌이 강한 걸 나중에 시음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다들 나보다 전문가들일 텐데 고개를 끄덕이며 그 순서로 조금씩 따라 달라고 부탁한다. 근데 이게 맞나?
훌쩍 두 시간이 넘어간다. 실내온도가 너무 높은 듯해서 레드와인을 얼음 바스켓에 넣었다. 샤토 디캠은 빈 병이 된 지 오래고. 내 잔에 조금 따라 마시며 온도를 체크해보려 하는데 내 앞에 있던 좀 높아 보이는 여성이 건배를 하자고 한다. 서빙을 잘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영어로 말한다. 사실 고마운 건 나다. 불어도 못하는 내가 어떻게 이런 경험을 해 보겠나? 답은 불어로 했다. 좀 짧긴 하지만. 메흐씨 Mer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