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루냐 사람들이 평생 꼭 한 번은 찾는 '몬세라트'

기적과 치유의 '검은 성모상'이 있는 카탈루냐의 영험한 성지

by 이팝

바르셀로나에 머무는 동안 꼭 가보아야 할 곳이 있었다. 이것이 스페인에 오게 된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른 아침 길을 나서야 해서, 준비해 온 비상식량으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했다. 사실은 아들에게 줄 보급품이었으나, 이전에 사 준 것들이 아직 남아 있다며 손사래를 친다. 햇반도 누룽지도 속 안 좋고 할 때 보글보글 끓여서 먹으면, 추운 겨울 타국에서 잠시나마 따뜻할 텐데... 과한 걱정이었나 보다.


무겁게 다시 들고 갈 수는 없고, 우리가 먹을 수 있을 만큼 먹고 가기로 했다. 햇반을 레인지에 데워, 김가루를 섞어 꼬마 주먹밥을 만들었다. 가방 속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조미김대신 김가루로 대체해 봤는데 아주 꼬숩고 맛있다. 즉석국도 요즘은 너무 잘 나와 1회분씩 포장되어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니, 해외여행 필수품으로 좋다.




동* 김가루는 맛이 뛰어나서 주먹밥 만들면 맛있고, 풀**은 패키징 디자인이 너무 예쁘다. 이렇게 예쁜 색과 디자인을 보면 아는 맛이지만, 덜컥 사고야 마는 나란 사람...참!


나는 스페인의 '에르콜리나 배'의 뭉근한 맛이 좋았는데, 남편은 입맛에 안 맞다고 했다. 이 예쁜 조합들을 안그리고 가면 서운할듯하여 그려 보았다.


밥을 다 먹고, 출발하기 앞서, 온화한 날씨를 보니, 머플러나 장갑 같은 것을 껴야 하나, 모자를 써야 하나 한참 고민이 된다. 여행지를 걸어보니, 짐은 무조건 가벼운 것이 최고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고심 끝에 머플러도 장갑도 모자도 두고 가기로.. 했다. 왜 그랬을까... 몇 시간 후에 때늦은 후회를 하게 된다.







'스페인의 3대 성지' 중 한 곳인 '몬세라트'는, 바르셀로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카탈루냐어''톱니 모양의 산', '톱처럼 갈라진 산'이라는 뜻이다.

이곳에는 수많은 순례객들이 찾는 '검은 성모상(La Moreneta)'과 아름다운 건축물, 그리고, 종교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몬세라트 대성당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몬세라트 소년 합창단'Escolania'(우리가 가는 일요일에는 예약할 수가 없어서, 못 보고 와서 아쉬웠다), 산타 코바 동굴, 그리고 신비한 자연경관이 기대가 된다. 그래서 하루를 비워 몬세라트로 향했다.


몬세라트는 바르셀로나에서 FGC 기차로 약 1시간가량 떨어져 있다. 그래서, 버스나 기차로 이동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기차가 편의성이 좋다. 에스파냐 광장 근처의 '플라사 데 에스파냐 역'에서 만레사행 R5 노선을 타야 한다.


에스파냐역 입구


연두색 클립표시를 쭉 따라가면 된다.


이곳에서 몬세라트행 열차표를 예매하면 된다. 케이블카와 산악열차 중 어느 것을 탑승할지 미리 생각하고, 구매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산악열차를 탈거라서 첫 번째 파란색을 누른 후, 수량을 입력한 후 트레블 카드로 결제했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iryo AVE 기차처럼 예매해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이곳에서 당일 구매하면 되었다.


우리 나라 전철처럼 이 무인기에서 원하는 패키지를 선택하면 된다. 왕복으로~


플랫폼으로 들어가, 정차되어 있는 기차를 타고 1시간쯤 달렸다. 참 신기하게도 여기 사람들은 휴대폰을 거의 안 본다. 대신, 기차 안에서도 수다 삼매경이다. 특히 아저씨들.... 여기저기서 어떻게 그렇게 쉼 없이 도란도란 말을 많이 하는지...(여행 첫날의 그 흑기사가 특이한 게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여행을 만끽하고 있는 느낌들이 전해 오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내가 그들의 대화를 못 알아듣기 다행이고, 우리의 대화를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게 다행이면 다행이랄까. 아무튼, 피곤해도 눈 붙이고 잘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KTX 타면, 안내방송 말고는 조용해서, 이런 문화가 대개 낯설다.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몬세라트!

도시를 벗어나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창밖 풍경이 점점 달라지는데, 빽빽한 건물 대신 바위산과 초록빛 자연이 펼쳐진다. 저 흐르는 듯한 바위들의 연결선을 보고 있자니, 가우디가 '까사 밀라'의 아이디어를 얻은 곳이 여기라는 말이 진짜인 것 같다.



우리는 산악열차 (Cremallera)를 타기 위해 'Monistrol de Montserrat 역'에 내렸다. 역사도 없는 간이역이지만, 사람들은 북적북적하다.



기차역 앞의 시계를 보니 아직 오전 10시가 안 됐다. 문득... 낯설고도 새롭다. 참고로, 겨울이라 8시간 시차가 있으니, 한국은 새벽 2시쯤 되었겠다. 나는 벌써 시차적응이 다 된 듯 컨디션은 쌩쌩하다. 아마도 사전 '전지훈련'의 힘이리라...



줄 서서, 마치 레고 모양 같은 산악열차를 탔다. 이 초록색 산악열차나 케이블카를 타면, 몬세라트의 장엄한 풍경을 감상하며, 수도원까지 금방 올라갈 수 있다.



올라갈 때 왼편, 내려올 때는 오른편에 앉으라는 이야기가, 이런 풍경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몬세라트가 가까워질수록, 특이한 모양의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이어진다. 사진으로 보던 모습보다 훨씬 압도적이었다.


산악열차를 타고 도착한 수도원이 있는 중심 지역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이상할 정도로 차분했다. 관광지이면서도 종교적인 공간이 가진 특유의 정숙함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낮추게 된다.



기차에서 내리니, 산꼭대기라 그런지, 옷깃을 여밀 정도로 바람이 차다. 머플러랑 모자 장갑 안 끼고 온 걸 뒤늦게 후회했다. 손도 시럽고, 추워서 가까이 있는 기념품 가게에 얼른 들어갔다. 인형, 초콜릿, 각종 기념품들이 알록달록 많다. 에코백이랑 묵주 팔찌를 샀다.




조금 한기가 가시자, 다시 나와 몬세라트산의 풍경들을 구경했다. 침묵과 고요 속에 시선이 고정된다.



'천사들이 조각한 땅'이라고도 불리며, 가우디'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뾰족한 첨탑과 '까사 밀라' 그리고, '장 누벨' '글로리에스 타워'도 이곳 몬세라트를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구름을 발아래 두고, 바위는 대단한 위용을 떨치고 있다.




병풍처럼 펼쳐진 '몬세라트 산'






내가 이곳을 찾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검은 성모상'이었다. 몬세라트 수도원 안에 모셔진 이 성모상은 오랜 역사와 전설을 지닌 상으로, 카탈루냐 지역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영험한 존재다.



내부로 들어가 성모상이 있는 곳으로 향하자, 자연스럽게 줄이 이어져 있었다. 모두가 각자의 마음에 조용한 기도를 품고 자기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유리로 감싸진 '검은 성모상'의 공('지구본'을 의미) 부분에, 손에 대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카탈루냐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이루고픈 기도가 있을 때,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한 발짝 한 발짝씩 나의 차례가 되어 가까워지니 긴장되고 엄숙해진다. 드디어 나는 지구본에 손을 대고, 성모님께 마음속 간절한 소원을 빌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앞에 서 있는 동안 주변 소음도, 시간의 흐름도 잠시 멈춘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 기도를 들어주소서!'

특별히 치유와 기적의 영험함이 있으시다니 이루어 주시리라 믿으며, 숙제를 다한 자의 가벼워진 발걸음을 옮긴다.

검은 성모상이 있는 내부는 촬영 금지라, 조용히 기도만 드리고 나왔다.




하늘과 맞닿은 기암괴석들!


수도원 밖으로 나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산과 계곡은 말 그대로 장관이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멀리까지 시야가 트이는데,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왜 이곳이 오랜 세월 사람들의 신앙과 휴식의 공간이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간단한 산책로와 트레킹 코스도 잘 정비되어 있어, 체력이 허락한다면 천천히 걸어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까마득하다


전망대 쪽에서 바라다보는 '몬세라트 산'



길 가 노점에는 꿀과 수제 치즈, 말린 과일 등을 파는데,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 듯, 우리를 보자, "맛있어! 맛있어"를 연발한다. 눈썰미가 대단하다. 보통은, 동양인들을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으로 디테일하게 알아보기 어려울 텐데...


몬세라트 산에서 먹는 뷔페라... 가보자!

입장하면서 계산하는데, 요런 플라스틱 컵을 준다. 음료수를 여기 담아 먹으라는 것이다. 다 먹고 나면 기념품으로 가져가도 된단다.


운영 시간 12:15~16:00 (점심시간 중심으로 운영)

채소류와 과일 샐러드, 디저트 종류가 많다. 특히, 토마토가 맛있었다. 뭐랄까...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빛이 담긴 신선한 맛이랄까...

식사하는 공간이 통창으로 되어 있어서, 밖의 몬세라트 뷰를 여유 있게 감상하면서 먹을 수 있었다.

맛있는 몬세라트에서의 식사였다.







몬세라트는 풍광도 수려하지만, '산 조르디 조각상'을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이 헌정한 작품들이 수도원 주변에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수난의 파사드'를 완성한 카탈루냐의 현대 조각가 '조셉 마리아 수비라치'의 작품이다.

음각으로 조각한 눈이, 걷는 내내 따라오는 느낌이다.


image.png '산 조르디 조각상' - 조셉 마리아 수비라치 작품





몬세라트의 방문 목적은 '검은 성모상'을 보기 위함이었지만, 천상의 풍경 속에서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고요한 시간과 위로를 선물 받은 하루였기도 했다. 바르셀로나 여행 중 하루를 비워 어디를 갈지 고민하고 있다면, 화려한 관광지 대신 이런 의미가 있는 장소를 선택해 보는 것도 분명 감동이 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몬세라트는 사진으로 담기에도, 말로 설명하기에도 너무 벅찬 곳이다. 더불어 '검은 성모상' 앞에 섰던, 그 짧은 순간의 신성하고, 절실한 기억은 이후에도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뜻 깊은 몬세라트 여행이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