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법을 배우는 데 평생이 걸렸다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산책

by 이팝

몬세라트에서 돌아온 우리는 에스파냐 역에 도착했다. 역을 빠져나오니, 멋진 구름을 배경으로 분수대가 있다. 여기도 부분 공사가 진행 중인 모양이다. 옆을 돌아다보니 범상치 않은 붉은 건물이 보인다.



에스파냐 광장 앞 아레나스 드 바르셀로나(Arenas de Barcelona) 쇼핑몰이다. 1900년대에 지어진 투우장 건물을 개조하여 만든 쇼핑몰로, 외관의 붉은 벽돌과 원형 구조가 매우 인상적인 건물이었다. 옥상 데크에 오르면 에스파냐 광장에서 몬주익 언덕까지 시내 전경을 한눈에 전망할 수 있다고 하는데, 피카소 미술관에 가야 했으므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아레나스 드 바르셀로나(Arenas de Barcelona) 쇼핑몰



우리는 서둘러 택시를 타고 몬카다 거리(Carrer de Montcada) 15번지의 낡은 중세 귀족 저택에 자리 잡은 피카소미술관에 도착했다.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과 지나가다 서로 어깨를 부딪쳐도 너그러이 이해될 듯한 좁은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니, 피카소 미술관이 나왔다. 생각했던 미술관 건축물 형식이 아니라, 주택가와 일직선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자세히 안 보면 지나쳐도 모를 뻔했다.



아치형 입구로 들어가니, 돌로 촘촘히 쌓아 올린 내부가 나온다.



돌로 지은 이글루 같았지만, 층계를 오르면 반전의 섬세한 디테일이 있었다.



특별히, 피카소 미술관에 꼭 와 보고 싶었던 이유는 피카소의 전생애에 걸친 작품들을 시기별로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극사실주의 그림을 직관하고 싶은 마음도 컸기 때문이다.


피카소는 어릴 적부터 나이 들어서까지 오랫동안 그림을 그린 화가이기도 했고, 그림의 사조가 여러 차례 바뀐 화가이기도 했다. 한 가지를 잘하기도 힘든데, 여러 방면에서 뛰어나 후대에 영향을 주었다.


피카소 미술관 전경


설레는 마음으로 돌계단을 오른다. 서늘한 중세 회랑에서 마주한 거장의 유년은 어떤 모습일까?


청년기의 피카소 자화상(종이에 목탄과 초크) - 피카소 미술관 소장


Pablo Picasso(1881–1973)는 1881년 스페인 말라가(Málaga)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미술교사였던 아버지에게서 미술 교육을 받았다. 1900년 이후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며, 현대미술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20세기 미술을 근본적으로 바꾼 혁신가로 평가되며, 1973년 프랑스에서 생애를 마쳤다.

약 5만 점이 넘는 작품(회화, 조각, 판화, 도자기등)을 남겼는데, 그중 4000천여 점이 바르셀로나 피카소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피카소의 아버지 - 피카소 미술관 소장


피카소의 아버지는 아들이 정규 엘리트 코스를 탄탄히 밟으며, 성장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피카소는 그의 끊임없이 시도되는 예술의 대한 사유가 아버지와는 달랐다. 청출어람의 젊은 청년 피카소는 아버지와의 반목도 불사하고 그의 예술세계를 확장시켜 나아갔다.


피카소의 시기별 드로잉 작품들 - 피카소 미술관 소장


우리는 대부분 입체파, 큐비즘의 피카소와 그의 작품들을 많이 보아 왔다. 하지만 피카소는 입체파이전에 대단히 극사실주의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 그림들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 공간에 와보니, 간단한 스케치와 크로키부터 어릴 때부터의 그림이 잘 보존 전시되어 있었다. 쉽지 않은데, 연대별 전시가 잘 되어 있어서 보는 내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피카소가 14~15세에 그렸다는 '첫 영성체'(1896) 의식 장면은 어린 나이에 그렸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사실적 표현과 전통적인 학문적 화풍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정밀한 묘사와 하얀 드레스의 질감, 그리고 경건한 분위기까지 어린 소년이 그렸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답다.


'첫 영성체' - 피카소의 여동생 롤라와 아버지가 모델이었다고 알려짐


또 다른 작품인 '과학과 자비' 또한 대표적인 사실주의 작품이다. 병든 여인을 의사와 수녀가 돌보는 장면을 그린 그림인데, 이 또한 아카데믹한 전통을 따르는 화풍이 잘 드러나는 그림이다. 옷과 이불의 섬세한 주름과 명암 그리고 침울한 분위기가 반영된 벽의 색채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나타내고 있다.

그의 타고난 재능에 더해진 수많은 데생과 채색 후에야 터득하게 된, 감각의 농후한 밀도 앞에서 그냥 발이 묶인 듯 움직이지 않았다.


'과학과 자비(1897)' - 출품하기 위해 아버지, 어머니가 의사와 환자로 모델이 되어 그려진 그림 (16세 때 그린 작품)


위의 온화한 그림들의 붓터치와는 또 다르게 거칠고, 투박하지만, 여러 색의 깊은 색채감을 힘 있게 드러내는 작품들도 있었다. 붓터치에서 야수파 같은 힘과 생동감이 느껴진다.


피카소 미술관 소장



사실주의와 인상주의가 섞인 초기의 수련기가 지나고 있었다.


'Nana'(1901) - 피카소


지나다 발길을 멈춘 곳. 바르셀로나 예술계에서 활동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탐색하던 시기의 석판 인쇄물 앞이다. 메뉴판을 홍보하는 실용적 목적을 위한 작업이면서도 예술적 감각이 강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요즘시대로 말한다면 홍보용 일러스트 같다.


아카데믹 사실주의에서 벗어나 아르누보와 프랑스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기 시작함

도자기에도 관심이 많았던 피카소는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피카소



미국의 사진기자였던 데이비드 더글러스 던컨이 찍은 작업실 모습


피카소의 도자기 작품들!



피카소 미술관 소장작품
피카소의 부엉이 도자기



이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벨라스케스의 '시녀들(Las Meninas)'을 재해석한 연작들이다. 피카소는 70세가 넘은 나이에 이 고전 대작을 58번이나 다시 그렸다. 캔버스 위에서 강아지는 더 우스꽝스럽게 변하고, 공주와 시녀들은 기하학적 재해석되었다.


피카소의 '시녀들', 거장의 오마주와 큐비즘



'The Painter and His Canvas'(1963) - 피카소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데, 마치 배웅하듯 피카소의 사진이 있다.


이처럼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 피카소는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던 초기를 지나,


청색 시대 (1901–1904) 친구의 죽음과 지독한 가난을 겪으며 고독, 그리고 우울로 가득 찼던 푸른 청색시대(대표작: The Old Guitarist)에, 그는 세상의 모든 슬픔을 푸른 물감에 녹여냈다. 그 푸른색으로 가장 뜨거운 슬픔을 서서히 식히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장밋빛 시대 (1904–1906) 새로운 연인을 만나며 따뜻한 분홍·오렌지 색조, 서커스 단원, 광대 등 인간적이고 서정적인 주제를 그렸다.


입체주의 (1907~) 큐비즘(Cubism)은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시작된 미술 운동으로, 전통적 원근법을 해체하고 사물을 여러 시점에서 동시에 분할, 재배치했으며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가 주도했다. 피카소의 입체주의의 출발점이자 대표작인 '아비뇽의 처녀들'(1907)은 형태를 과감히 분해한 혁명적 작품이었고, 이후 'Guernica'(1937)는 스페인 내전 중 폭격당한 게르니카를 주제로 한 반전(反戰) 작품으로 흑백의 강렬한 구성과 왜곡된 인체 표현으로 전쟁의 고통과 인간의 비극을 그렸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법을 배우는 데 평생이 걸렸다" - 피카소


60여 년 동안 극적인 화풍의 변화를 주도하던 피카소도 결국은, 이 한 마디로 그의 거대한 작품세계와 완벽함을 결론지었다. 가장 순수한 어린아이의 동심으로 돌아가기까지 평생이 걸렸노라고.



'The Monkey Painter'- 피카소


미로를 헤매듯 여기저기 많은 전시장을 걷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크고 작은, 극사실과 큐비즘의 평면화와 입체 도자기까지, 피카소의 다양한 작품들을 관람했다. 피카소의 긴 인생 전반의 그림들을 본다는 건 대충 보아도 쉽지 않았다.


보고 싶었지만, 미술관 폐장시간이 다가오는 지라 피카소의 기념품 샵으로 향했다.


피카소 미술관 굿즈숍으로 가는 길


피카소의 작품으로 만든 기념품 가게 또한 멋지다. 피카소의 멋진 작품들을 또 다른 형태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피카소미술관 기념품숍


피카소미술관 기념품숍


여행을 떠나는 두 사람을 심플하고 익살스럽게 그린 피카소의 엽서를 샀다.


여행은 늘 밖으로 떠나는 일이지만, 결국 안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피카소가 그린 수많은 얼굴을 보며 나는 나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리하여 끊임없이 변화될 나의 삶들을...


피카소 드로잉 엽서




피카소 미술관: https://museupicassobcn.cat/en



미술관을 나와 다시 바르셀로나의 좁은 일상의 골목길에 들어섰다.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가슴 한가득 두근거림이 있었다. 두 눈가득, 마음 가득한 포만감이 느껴진다. 바쁜 시간을 쪼개 오길 잘했다.






좁은 미로 같은 길을 걸으며, 정신적 충만감과는 달리 현실의 두 다리는 기운이 풀리고, 입은 빠짝 마르고, 배안에서는 얼른 먹을 것을 달라 요동치고 있다. MZ의 날카로운 검색이 이루어진 후, 우리는 그를 따라 걸었고 얼마 후 작은 간판이 걸린 식당 앞에 서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


Eixample 지구에 있는 'Pirineu En Boca' 식당


가열찼던 하루의 일정을 정리하며, 서로 위로하며 피곤을 푸는 시간이 되었다. 와인도 안 마시는 편인데, 이곳에 와서 거의 매일 샹그리아를 마시고 있는 것 같다. 알코올기운에 얼굴이 붉어지고 있다.



피레네 지역의 목초육과 전통 산지 식재료가 중심이라는 이곳의 고기와 그릴 메뉴는 다 맛이 괜찮았다. 고기를 3인분에 맞게 주문한 거 같은데, 너무 많이 나왔다



맛있게 잘 먹고, 보람찬 하루를 보낸 것 같아 뿌듯한 하루였다. 매일 이렇게 누군가 해주는 맛난 거 먹고, 놀러만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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