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비

남자는 아이리시 하프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거리의 한복판에 서서 연주했고 주변 사람들의 관심도 끌 줄 아는 사람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눈을 감고 있다가도 어떻게 알고 쳐다보기도 했으며 웃어주기도 했다. 그는 서양인이었고 확실히 입이 컸다. 그래서 웃을 땐 입꼬리가 볼의 거의 끝까지 닿는 것처럼 보였다.

몇 분 더 걸어가면 도로와 만나는 거리 끝이 있다. 그 거리 끝에는 노숙자들이 즐비해 있다. 내가 서 있는 공간은 정면에 차들과 노숙자만이 있고 걸어 다니는 사람은 찾기 어려운 길이다.

그들은 멈춰 있지만 서 있지 않았다. 아이리시 하프 연주자와의 차이는 그것이었다. 입꼬리는 주름에 파묻혀 있고 그들 역시도 가만히서 자주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만 사람들은 멈춰주지 않고 그들은 성의를 보일 필요가 없다. 따라서 그들의 무기력은 순환적이다. 그들 스스로는 일어날 수가 없는데 누구도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주지 않고 어쩌면 그들은 그런 이유로 상담하러 가는 대신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깔고 앉은 신문지가 집의 전부고 입고 있는 야상이 옷의 전부다. 일렬로 걷는 일행들이 유지하는 거리보다도 가깝게, 서로가 서로에게 붙어 있지만 그들 사이엔 교류라는 건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곳의 삶에 삶과 죽음 외에는 무엇도 없다.
그들의 가족은 모두 어디 있을까?

그 중 한 명의 남자는 다리 위로 기타를 안고 있었고 나는 그의 배경이 유독 특히 더 궁금해졌다. 누군간 그에게 좋게 말하면 거리의 악사, 나쁘게 말하면 노숙자라고 하겠지만 하지만 그는 악사가 아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하프 연주자는 좋고 이 남자는 나쁘다. 단지 그렇게만 나눌 수 있다. 하프 연주자에게 노숙자라고 할 수 없고 이 남자에게 악사라고 할 수 없다.

그가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기타를 친다면 그는 악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가 노숙자에서 악사가 되는 데에 심히 어려운 부분은 없어 보이나 그는 하지 않는다. 그것은 온전히 그의 선택이다. 그는 노숙 생활을 하면서도 기타를 가지고 다니고, 연주하지 않아도 버리지 않는다. 그가 노숙자와 다른 점이고 하프 연주자와 반대되는 점이다.

나는 사람의 삶에서 안티테제를 엿보았다. 그것은 무척이나 잔인한 경험이었다. 하나의 간결하지만 중대한 선택이 일생에 미치는 영향 예컨대 내가 어떻게 작동되는지에 대한 체계와 같은.

정반대의 삶이라는 건 수평적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놓일 수는 없다. 그들은 늘 수직적인 위치를 가지기 때문에 안티테제라는 것이다.


이를 삶에서 관찰했단 사실은 나의 시선을 한없이 잔인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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