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롭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겨우 눈을 뜨고 거실로 나옵니다. 거실 창문을 열고 들어오는 공기를 맞으며 날씨를 체크해 봅니다. 유난히 피곤한 아침. 곧 장마가 시작된다더니 수분을 잔뜩 머금은 눅눅한 바람에게 잠에서 깨지 못하는 탓을 돌립니다. 찬물 샤워로 쨍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샤워실로 들어가 야심 차게 수도꼭지를 오른쪽으로 돌려보지만 이내 중간을 넘지 못하고 그나마 살짝 왼쪽으로 틀어진 상태의 온도로 오늘을 시작합니다.
비 오는 날엔 “시원하다”라고 탄성이 절로 나오는 뜨끈한 국물 요리로 속을 데우고, 비 때문에 카페에 들르는 것도 귀찮은 날이니만큼 풍미가 좋은 커피콩을 직접 갈아 내린 커피도 텀블러에 채웁니다. 오늘의 의상은 최대한 심플하게. 젖어도 상관없는 맨발에 샌들, 블루 셔츠에 검은색 슬랙스 바지를 입고 현관문을 나옵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생각합니다.
비 온다고 다른 날 보다 신경 쓰임이 많고 분주했던 아침이었네요. 피식 헛웃음이 납니다. 그깟 날씨가 뭐라고. 맑으면 맑은 대로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그냥 나는 나대로 꾸준히 계획대로 살면 되는데. 날이면 날마다 순간이면 순간마다. 그때그때 환경과 상황에 맞춰 변화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평화롭고 유연한 삶이란, 언제나 휘둘리지 않고 살기 위해 애쓰기보다 그날그날의 변화에 몸과 마음이 기꺼이 따를 수 있어야 얻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하루 계획, 한 달 계획, 일 년 계획. 나는 원래 계획에 따라 사는 것을 안정으로 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변화는 곧 불안이었고 적응은 척박한 땅에서 온갖 정성을 기울여 수확한 열매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늘 불안을 옆에 끼고 살면서 평화롭고 아름다운 삶을 막연하게 꿈꾸고 바랬습니다. 다정함, 애틋함, 사랑과 같은 단어들은 언제나 나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있다고 여기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겨우 나의 내면의 척박함을 바라볼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세상의 모든 낯선 것들이 아름다운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년 이 무렵, 호수공원에서 러닝을 하던 중에 예고 없이 쏟아지던 소나기가 생각납니다. 아무런 대비도 없이 맞닥뜨린 상황에 속수무책 난처해지긴커녕 오히려 땀을 식혀주는 오아시스와 같던 비였습니다. 공원에서 여유를 즐기다가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이 비를 피하기 위해 부산히 움직일 때, 그들 사이로 홀딱 비를 맞으며 달리던 나의 모습이 새삼 아름답습니다. 옴닥옴닥 비를 피해 서 있던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던 시선은 비를 맞는 여인에 대한 낯섦보다 기꺼이 비를 맞을 수 있는 용기에 대한 경이로움에 찬 눈빛이었기를 기대합니다.
여전히 나는 슬픔보다는 기쁨을, 불안보다는 안정을 느끼며 살고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나는 아직까지 그렇게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때때로 불편하고 힘든 밤을 보내곤 합니다. 그래서 오늘 같은 생각에 잠기게 될 때면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낯선 것들에 잘 적응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합니다. 바쁘게 사는 와중에 나의 슬픔과 불안을 잘 달래며 살아가는 것은 또 하나의 과제처럼 어렵게 여겨지지만, 나는 내면의 땅에 씨앗을 심고 돌보길 숨 쉬듯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이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비 맞은 모습을 아름답게 여기듯. 가끔 초라하고 부끄럽게 보이는 나 자신을 꾸며내 보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나다움’은 노력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놔두어야 더 잘 찾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완벽한 안정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기에 ‘완전한 나‘에 집착하지 않겠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순간순간 흐르는 대로 낯설고 변하는 것에 적응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다움’을 아름답게 여기며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