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 아동도서에 대한 이야기 1
저는 영미 아동도서의 대표 장르인 그림책의 어휘적 수준이 생각보다 높다는 점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 영미 그림책(영어로 쓰인 그림책)을 고를 때 크게 3가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작품성, 둘째는 접근성, 셋째는 적합성입니다. 작품성을 고려한다면 가장 무난한 선택은 영미권 아동 문학상을 받은 책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접근성을 고려한다면 역시 수상작이 국내 온라인 서점에서도 구하기가 수월하고 인근 도서관에도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이 두 가지 요소들이 도서 선택을 위한 절대적 기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동 문학상을 받지 않아도, 공신력 있는 기관의 추천을 받지 않아도, 국내에서 구할 수 없어도, 내 지역의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지 않아도 부모님들은 개인적 의도와 개인적 수단을 통해 다양한 영미 아동도서를 자녀들에게 소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요소인 적합성만은 부모님들의 개인적 의지나 작은 욕심과 무관하게 절대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에게 적합성이란 도서와 자녀의 일치도가 얼마나 되는가라는 대답입니다. 여기서 일치도는 여러 가지 기준들이나 요소들이 고려됩니다. 그중 대표적인 기준들로 도서에 사용된 어휘의 수준, 문법의 수준, 내용(소재, 주제 등) 등이 있습니다. 이밖에도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그나마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미국의 상업적 지수들을 가지고 적합성을 먼저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런 상업적 지수들로서 온라인 서점들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Lexile 레벨 지수, ATOS 지수, 아마존의 학년과 나이 등이 있습니다. 다만 이 미국 원어민을 위한 상업적 지수들이 외국어로서 영어를 배우는 EFL 교육 환경의 국내 아동들에게 바로 적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대한민국의 공교육 내에서 적합 수 있는 어휘들과 영미의 대표적인 그림책에서 사용된 어휘들의 일치도까지 가볍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미국어린이도서관협회(ALSC)는 우수한 그림책들을 선정하여 한 권의 칼데콧 메달 수상작과 4권의 명예 수상작들을 발표합니다. 2019년 칼데콧 메달의 수상작은 2016년 칼데콧 메달을 수상했던 호주 출신의 그림작가인 소피 블랙올(Sophie Blackall)의 'HELLO LIGHTHOUSE'입니다. 해당 수상작은 “안녕, 나의 등대”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제 이 책으로 영어 그림책의 어휘 수준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수상작: Hello Lighthouse, illustrated and written by Sophie Blackall
출판사: Little, Brown and Company, a division of Hachette Book Group, Inc.
현재 초등학교 영어 교육에 적용되는 교육부 '2015년 개정 영어 교육' 과정을 기준으로 살펴보기 전에 해당 도서의 미국의 대중적인 영어 읽기 레벨 지수들을 알아보겠습니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영어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비영어권 사람들에게 원어민의 영어 읽기 레벨을 바로 적용하기에는 정말 큰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읽기 레벨 지수들을 먼저 살펴보는 이유는 영어 그림책을 선택하고자 하는 한국 부모님들이 온라인 서점과 영어 그림책 소개서들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고 영미 도서들의 난이도를 어느 정도나마 서로 비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HELLO LIGHTHOUSE'의 주요 읽기 레벨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미국 아마존에서 표시한 연령 범위 5~8세, 학년 범위 Preschool~K3(진학 이전부터 미국 초등학교 3학년)
2. 미국 렉사일(Lexile) 지수: AD 510
3. 미국 ATOS Book Level: 3.4
이제 3가지 읽기 레벨들을 같이 살펴보면, 이 책은 빠르면 초등학교 진학 이전, 대개 미국 초등학교 2~3학년이 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유치원 이전에도 가능하다는 부분은 어른이 크게 읽어주는 책으로써 아이들이 이해 가능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좀 더 알아보면 미국에서 아직도 흔하게 인용되는 읽기 레벨인 Flesch-Kincaid Grade level로도 역시 초등학교 2학년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 읽기 연령 가이드는 최소 5년에서 8년 동안 끊임없이 주변에서 영어를 듣고 보고 말한 아이들, 특히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자신의 자녀를 위해 주의 깊게 영어 언어생활에 개입하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성인(보호자)을 둔 미국 아이들을 위한 가이드라는 점이 문제입니다.
“미국 학생은 늦어도 초3학년이면 읽는다는 HELLO LIGHTHOUSE, 우리는 언제 읽을 수 있을까?”
이제 2015년 개정 영어 과정에서 제시하고 있는 단어들을 통해 우리의 아이들은 몇 학년쯤 되어야 해당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알아보겠습니다. 아이들마다 영어 조기 교육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학교 정규 교육만을 받는다는 가정으로 분석합니다. 미국 초등학교 3학년이면 읽을 수 있다는 ‘HELLO LIGHTHOUSE’는 우리 아이들은 언제 볼 수 있을까요? 참고로 우리나라 공교육에서 영어를 처음 시작하는 학년이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분석의 방법은 영미 도서에서 현재 영어 교육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단어들의 사용 횟수로 해당 도서의 어휘 수준을 살펴봅니다. 실제 리딩 역량에 대한 분석은 영미 도서의 어휘들을 좀 더 세부적으로 분류하고 독자 개인의 어휘력을 각각 고려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대한민국의 영어 교육의 현재 기준인 2015년 개정 영어 교과과정에서 제시하는 기본 어휘 관련 지침과 기본 어휘 목록의 단어들을 기준으로만 살펴보겠습니다.
‘HELLO LIGHTHOUSE’에서 사용된 단어들의 횟수에 대한 분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단, 해당 결과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특히 기본 어휘에 대한 파생어의 종류와 파생어 적용 레벨 등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HELLO LIGHTHOUSE’에는 총 650개의 단어가 적어져 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배울 수도 있는 단어들이 이 책 전체의 61%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전 학년에서 배울 수 있는 외래어까지 포함하면 63%입니다. 여기에 고유명사 등(새로운 어휘로 간주되지 않는 단어들)까지 포함해도 65% 미만입니다. 이제 중등과정인 중학교와 고등학교(전문, 심화 포함)의 단어들까지 배우면 91% 정도입니다. 아쉽게도 남은 8.6%의 단어들은 우리나라의 공교육에서는 만날 수 없습니다.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에 나온 단어를 독자가 95% 이상 알아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 수치가 오른 98% 이상이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런 연구 결과들을 고려한다면 ‘HELLO LIGHTHOUSE’는 학교 교육만 받은 우리나라의 중학생뿐만 아니라 고등학생도 독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교육부가 제시한 어휘들에 대한 학습량이나 자녀의 실제 학업성취도마저 반영하면 이 책은 가히 우리 아이들에게는 넘사벽이 됩니다.
여기까지가 미국에서 유명한 아동 문학상을 받은 영어 그림책에 대한 적합성을 대략적으로 어휘 수준만 살펴본 결과입니다. 안타깝지만 'HELLO LIGHTHOUSE'는 우리 아이들에게 첫 장의 "Hello!... Hello!... Hello! Hello, Lighthouse!" 문구를 너무도 쉽게 뒤로 한 채로 "Bye! Bye! Bye! HELLO LIGHTHOUSE"를 외치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