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 아동도서에 대한 이야기 14
우리나라 속담에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속담에 딱 맞는 책이 오늘 도착했습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라는 속담처럼 오늘은 이 책의 앞에 적어져 있는 'Gift Set'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쑥스럽지만 확실히 잿밥인 이 책은 가장 나중에 소개하겠습니다.
아래 사진의 책은 샘 맥브래트니(Sam McBratney) 글, 아니타 제람(Anita Jeram) 그림의 'Guess How Much I Love You'입니다. 국내의 번역서는 "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사진 속 책 패키지를 보시면 '잿밥'이 가리키는 의미를 쉽게 짐작하실 겁니다. 바로 '인형'입니다.
이 책은 1994년 첫 출판되어 현재까지 사랑받고 있습니다. 장수(長壽)하는 그림책들의 특징 중 하나는 정말 다양한 형태로 책이 출판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그림책들은 인형과 책이 같이 있는 패키지, 팝업북 등으로 쉽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인형과 책이 같이 있는 그림책은 선물 세트(Gift Set)라는 표현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밖에 온라인 서점이 제공하는 서지정보에서 만날 수 있는 표현으로 'Novelty book', 'Mixed media product', 'Book and Toy Gift set' 등이 있습니다. 해외 온라인 서점들에서 '묻지 마' 구매를 원하다면 검색창에서 'book with toy'라고 검색해도 만족할 만한 검색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국내 온라인 서점들에서는 책 제목과 일치 유무로 검색 결과를 알려주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book with toy'와 같은 키워드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어 아동도서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국내 온라인 서점들의 광고 배너에서 이런 선물 세트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해외직구와 비교하면 구매 가격도 나쁘지 않습니다. 어떨 때는 더 저렴하기도 합니다.(단, 해외직구 쿠폰이나 아마존 딜 제외) 국내 주문이라서 빠르면 책을 다음날 받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국내 전문점들은 해당 책들의 구체적인 사진과 설명까지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의 선물 세트는 '잿밥'의 끝판왕이라고 생각되는 인형과 그림책의 패키지입니다. 이 패키지는 애런 블레이비(Aaron Blabey) 글그림의 'Pig the Pug' 시리즈입니다. 구성품으로는 소리 나는 주인공 'Pig' 인형과 'Pig the Pug', 'Pig the Fibber', 'Pig the Winner', 'Pig the Star'란 그림책 4권이 오디오 시디와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단의 사진 속 토끼 인형은 그림책의 한 분야인 장난감 책(toy book) 또는 노벨티 북(novelty book)이 어떤 건가 알아보기 위해 구입한 경우입니다. 이에 반해 이 선물세트는 국내의 해외도서 전문 온라인 서점에서 광고하는 것을 보고 정말 개 인형이 탐이 나서 구입했습니다.
영어 공부에서 영어 아동도서가 '넛지'(Nudge)가 되길 바라는 맘에 화려한 커버의 책들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인공 인형이 포함된 선물용 책 세트도 저의 숨은 의도를 이루기 위한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됩니다. 인형을 좋아하는 맘으로 인형이 나오는 책도 한번 읽어보지 않으렴... 다만 여기에도 현실적 괴리는 있습니다. 영미 국가의 어린 독자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책 선물세트가 국내에서 영어를 시작하는 우리 아이들의 연령대와 일치하는가의 문제가 있습니다.
예시의 'Guess How Much I Love You'의 선물세트는 아마존이 소개한 연령은 3~7세이고 학년은 취학 전부터 2학년을 대상으로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형태이지만 내용이 같은 책에서는 대상 연령이 '아기 - 3살'(Baby - 3 years)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책의 추천 연령대를 추가로 확인하였습니다. 미국 학교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의 사서들을 위한 'SLJ'에서 추천하는 학습 연령대는 취학 전 아동입니다. ATOS의 북 레벨은 2.8로 미국 초등학교 2학년 수준으로 SLJ보다 다소 높은 편입니다. 그래도 아마존 연령 3~7세에 포함됩니다. 단, 모국어로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 아이들 기준입니다.
만약 초등 3학년에 영어를 시작하여 공교육만 받고 있는 자녀라면 어떻까요? 2015년 개정 영어 교과과정 어휘 분석은 다음과 같습니다.(단, 파생어 처리 기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음) 이 책에 적어져 있는 총 단어수는 378개입니다. (단, 축약 등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 공교육에서 만날 수 없는 단어들(차트 내 '불일치')이 3% 밖에 되지 않습니다. 외래어와 고유명사 등을 포함해서 초등학교 교과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단어들은 전체 단어의 90.5%에 이릅니다. ATOS의 북 레벨 2.8인 그림책이지만 국내 공교육 기준 어휘 수준을 고려한다면 단어 난이도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래도 문장의 길이와 형태가 초등학생들에게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미국 아이들을 위한 책 선물 세트가 국내 실정에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영어 조기 교육으로 미국 아동의 언어 발달 수준과 큰 차이가 없는 자녀라면 이런 걱정은 기우(杞憂)입니다. 하지만 영어의 파닉스(phonics) 조차 힘들어하는 초등 고학년 아이에게 영어 실력과 인형에 대한 기호 등이 고려되지 않는다면 인형이 '잿밥'이나 '넛지'로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염불'보다 '잿밥'에 욕심이 나서 아마존에서 구입한 책을 이제야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아래 사진 속 패키지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라는 온라인 게임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어 '요리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요리책' 보다 '요리 앞치마'에 눈이 어두워서 구입한 선물 세트입니다. 즉, 앞치마가 주(主)고 요리책은 덤입니다. 아무리 덤이라지만 저는 이 요리책을 보면서 한 번쯤은 요리를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이처럼 비디오 게임 등의 콘텐츠들과 관련된 영미 아동도서들도 찾아보면 의외로 많습니다. 이런 책 선물세트도 자녀들을 위한 영어 노출의 다양한 기회 중 하나가 될 수 있으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