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 아동도서에 대한 이야기 15
저는 수상작, 추천작 등의 영어 아동도서들이 국내 번역서로 출시되었는 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특히 영어 아동도서들 중에 영어 그림책을 가장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번역서가 있다면 영어 그림책과 형태적 차이는 없는지, 각각의 내용과 표현은 서로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고려하면서 번역 그림책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물론 이와 반대로 국내 그림책을 먼저 접하고 그 원작을 찾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초등학교 수록 도서와 연계 도서라고 소개되는 국내 아동도서들입니다. 이를 위한 최근 검토 자료는 '학교도서관저널 도서추천위원회'의 '2021 추천도서목록'이라든가 '경기도 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의 '초등 교과수업 연계도서 2021학년도' 등이 있습니다. 이 추천 자료는 해당 기관에서 매번 발표하고 있습니다.
'학교도서관저널 도서추천위원회'의 추천도서들이 주제와 장르 등을 기준으로 분류되는 반면 '경기도 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의 추천도서들은 초등학교 과목, 학년, 교과내용 분류를 기준으로 좀 더 세분화되고 있습니다. 저는 '경기도 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의 매년 추천작을 기준으로 영어 원서가 있는 국내 아동도서들을 선정하여 분석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초등 교과수업 연계도서의 영어 원서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원서는 영어로 된 아동도서입니다. 저의 글에서 '원서'와 '원작'의 표현을 다르게 사용하겠습니다. 제가 소개할 대부분의 원서들은 처음부터 영어권 작가에 의해 영어로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간혹 원작의 작가가 영어권 작가가 아니라서 원작을 영어로 번역된 원서들도 있습니다.
그것도 알고 싶다.
이야기에 앞서 이 글은 어떤 문제의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무슨 잘못을 지적함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이 글은 초등 교과수업 연계도서의 영어 원서를 소개하기 전에 원서와 번역서의 일부 비교 수치에서 발견되는 저만의 의문사항을 다룹니다. 저만의 질문들을 통해서 초등 교과수업 연계도서와 해당 원서를 소개할 때 우려되는 부분을 짚어보겠습니다.
아래 사진 속의 책들은 리처드 토리(Richard Torrey)의 '학교에 간 공룡 앨리사우루스'(Ally-saurus & the First Day of School)입니다. 이 번역책은 '경기도 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의 2021년 추천도서입니다. 이 번역서는 초등 '1학년 1학기 통합(봄1)'의 교과와 연계되어 읽어볼 만한 도서로 선정되었습니다. 즉, 이 번역서의 주요 대상 독자는 초등학교 1학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과에 연계되어 '읽어볼' 만한 도서라는 의미에 '읽어줄' 만한 도서라는 의미도 포함이 되는 건가요?
저에게 의문점을 안긴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해당 원서인 'Ally-Saurus & the First Day of School'의 미국 아이를 위한 리딩 레벨이 한국 아이를 위한 국내 번역서의 대상 독자보다 현저하게 높습니다. 이 원서의 렉사일(Lexile)은 AD 530L이고 ATOS 북 레벨은 3.6입니다. 물론 이 원서의 적절한 연령대로 SLJ과 아마존의 책 소개에서는 취학 전 아동부터 미국 초등 2학년까지의 수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혼북(Horn Book)은 해당 연령대로 취학 전 아동으로 한정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원서의 제목으로 이제 막 초등학교를 들어가는 주인공을 다룬 이야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이 원서의 대상 독자도 학교를 들어갈 예정이거나 미국 초등학교 1학년이 확실한 듯 보입니다.
하지만 렉사일의 530L과 ATOS의 3.6이 눈에 밟힙니다. 무엇보다도 렉사일의 'AD'(Adult-Directed) 코드는 다음 추측에 가장 큰 증거입니다. 렉사일의 코드인 'AD'는 책을 읽기 위하여 어른의 도움이 필요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대개 부모님들이 읽어주는 그림책에 리딩 지수 앞에 'AD'가 붙습니다. 그리고 렉사일의 지수 530L을 ATOS 북 레벨로 변환하면 2.9에서 3.0 사이입니다. 이 두 리딩 레벨 지수를 고려하면 책의 내용은 미국 초등 3학년의 수준이어야 '스스로' 읽을 수 있습니다. 즉, 미국에서 이 원서는 미국 초등 1학년 이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대상 독자들이 스스로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영어 원서는 해당 그림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미국 아이들을 위하여 미국 부모님이 대신 읽어주면서 내용을 알려주는 전형적인 그림책인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 초등학교 1학년이 스스로 읽지 못하는 영어 그림책의 번역서를 한국 초등학교 1학년은 제대로 읽고 이해할 수 있을까요? 위의 사례처럼 미국 초등학교 3학년이 읽을 만한 수준의 영어 문장을 번역한 글을 한국 초등학교 1학년은 읽고 이해할 수 있을까요? 만약 엇비슷하게나마 서로 일치하다면 원서와 번역서의 대상 연령이 서로 차이가 나면서 묘한 위화감이 발생할 것입니다. 일단 위의 사례의 '학교에 간 공룡 앨리사우루스'도 우리 부모님이 우리 자녀를 위해 읽어주는 한글 그림책, 즉 읽어볼 책이 아니라 읽어줄 책이라면 이런 모호한 의문은 말끔히 사라집니다. 물론 자녀들의 언어 발달 수준은 개인차가 심합니다. 선천적 능력뿐만 아니라 조기 교육은 이런 차이를 가중시킵니다. 그래서 어떤 아이에게는 이 번역서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 읽어볼 책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다른 아이는 이 영어 원서조차 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일부러 언급하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과 미국의 입학시기는 다릅니다. 미국의 입학 연령은 만 6세이고 한국은 만 7세입니다. 미국이 한국보다 입학이 1년 빠릅니다. 즉 미국의 초등 2학년의 나이가 한국의 초등 1학년의 나이와 같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초등 1학년과 한국의 초등 1학년의 아이들을 비교했을 때 언어 발달 수준이 서로 상당히 다를 수 있습니다. 같은 초등 1학년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모국어에 노출된 시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미국과 한국의 연령으로 비교해도 같은 나이이지만 공교육에 노출된 시간도 서로 다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저는 미국의 학년제와 한국의 학년제를 바로 비교하여 독해력에 대한 접근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아동문학의 국내 번역서가 해외 원작의 내용을 국내 어린 독자를 위하여 내용의 첨삭과 어휘 수준의 하향 등을 통하여 독해 수준을 낮추는 사례들을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원서와 번역서에 대한 대상 연령과 학년의 정보로는 독해의 난이도를 서로 비교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리기로 했습니다. 번역서가 쉽다 하여 꼭 원서마저 쉬울 거란 생각은 버려라...
앞으로 소개될 책들은 번역서와 원서의 연령대가 차이나는 작품들이 많을 것입니다. 앞선 사례와 다르게 번역서가 원서보다 추천 연령대가 높은 경우도 있습니다. 2020년 '통합'과 '국어' 과목 연계 도서인 제시카 러브(Jessica Love)의 '인어를 믿나요?'는 한국 초등 2학년부터 4학년이 읽어볼 도서라고 추천되었습니다. 이에 반해 원서인 'Julian is a Mermaid'는 렉사일 180L, ATOS 0.8으로 리딩 레벨은 미국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이고 각종 자료에서 대상 독자도 미취학 아동부터 미국 초등 2학년입니다.
혹시나 저처럼 아직도 원서와 번역서의 대상 독자의 연령대의 미묘한 수치 차이들이 눈에 거슬립니까? 아쉽게도 저는 국어 독해 수준까지 고민할 여력도 없고 영어와 한국어 언어 습득의 차이를 시원하게 설명할 수 있는 깜냥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소개할 초등학교 연계 도서와 해당 원서의 대상 독자의 연령대 차이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저는 초등교과수업 연계도서들은 해당 교과목에서 나타나는 특정 주제에 대한 지식을 늘리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합니다. 즉, 추천된 연계도서들이 해당 원서의 독해에 도움이 되는 배경지식과 용어들의 의미에 익숙해지는 좋은 기회를 우리 자녀에게 줄 것입니다. 저는 초등교과 연계도서와 그 원서인 영어 그림책의 콤보는 초등학생의 영어 독해력을 상승시키는 또 다른 전략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