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 눈뜨서 보고듣고 맡고 말하고 걷고 앉는다

by 윤해


2024.02.23


써보고 나니 하루를 사는 우리가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 꽤 많음을 느낀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세상에 와서 살면서 서로 경쟁하며 생활하다 보면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음을 잊고 인간으로서 세뇌되고 주입된 허상을 쫓아 분주히 하루하루를 살면서 잘 가고 있다는 착각, 즉 선행(善行)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것이다.


뇌정보 세상에서 우리는 뇌가 즐겁고 시원한 업을 찾아 수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행(行)(言)(數)(閉)(結)을 반복하면서 그것을 잘하면 선행(善行)이 되고 선언(善言)이 되며 선수(善數)를 쳐서 선폐(善閉)하여 선결(善結)하려 든다. 그리고 이 한 바퀴를 무난하게 돌려서 뇌정보가 심어준 세상에서 승리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생명에너지를 불사르는 데 조금의 주저도 마지않는다.


생명에너지가 관장하는 유전정보 세상에서는 뇌정보 세상에서 우리에게 심어준 가치관을 그리 중시하지 않는다. 유전정보란 우리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된 해인과도 같은 생명에너지의 명령에 따라 자연스러운 행동과 판단을 하는 것이지 인간 세상이 우리의 뇌에 심어준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는 아바타와 같은 모습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우주적 기를 타고 태어난 생명이고 하루도 이 우주적 기를 벗어나 생활할 수없지만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키는 대로 하다 보면 어느덧 생명에너지가 고갈되어 스러져가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노자도 겸허와 부쟁의 모습으로 물을 들어 상선약수로 치켜세우며 무위의 도를 이야기한 것은 거짓 없는 자연은 행위가 없음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한 행위로 가득 차 있음을 강조하신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뇌정보 세상에서 선은 뇌가 시원하고 쾌감을 느끼는 업이다. 사실 우리가 글과 말로 세운 인간의 문명은 뇌정보를 기반으로 선악과 오욕과 칠정을 구분하여 선악관을 확립한 문명이다.


무위자연의 무자비함에서 살아남고 벗어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우리 인류는 생명에너지를 갖고 있는 개별 생명으로서의 유전정보적 선행을 유지하지 못하면 한 순간도 지속할 수 없는 존재임에도 늘 이 사실을 망각하고 뇌정보적 욕심으로 나아가려는 욕망을 주체하기 어렵다.


그 결과 생로병사의 단계를 가속화시켜 우리가 세상에 나올 때 가지고 나온 생명에너지를 고갈시키면서 쾌감을 느끼는 가치전도의 한생을 살아내는 것이 우리가 사는 모습 아닐까?


우리가 하루를 사는 모습에는 선행과 악행이 희비쌍곡선 마냥 매양 교차되고 중첩된다. 선행만으로 살 수 없고 악행 없이도 살 수없다. 선행과 악행의 이분법적인 구분보다 선행이 무엇인지 악행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선행은 양고기를 풀과 같이 입에 넣는 자연스러운 행위다. 즉 생명에너지를 활성화한다. 이에 비해 악행은 뇌정보에 누군가가 심어준 가치관을 따라 하는 행위다. 악행의 악을 파자하면 버금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다. 우리 모두의 생명은 으뜸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욕심 때문에 버금이 되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나락으로 추락하여 우리가 우주로부터 받은 생명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악순환으로 빠지는 것이다.


우리가 하루를 활기차게 사는 방법이 자연스러운 선행을 자주 하고 인위적인 악행을 삼가는 어쩌면 원초적 유전정보적 감각만 잃지 않으면 세상을 사는 우리 모두 멋진 하루를 보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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