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도 끝난 것이 아니다, 희망이 있는 한

by 윤해



2024.02.25

셰익스피어의 희곡 ‘끝이 좋으면 다 좋아(All's Well That Ends Well)’의 대사 중에 “어쨌든 만사 끝이 좋으면 다 좋게 되는 법이니 기쁘기 한량없구나. 씁쓸한 지난 일은 다 지났으니 앞으로 달콤하기 그지없는 일들만 찾아올 것이니라.”라는 대사에서 희망이라는 것과 동행하며 사는 우리의 한 생을 생각해 보게 된다.

희망을 생각하면 판도라의 상자가 떠 오른다. 제우스가 아름다운 판도라를 에피메테우스에게 시집보내면서 딸려 보낸 작은 상자의 뚜껑을 판도라가 연 순간 세상으로 튀어나온 미움, 슬픔, 질투, 복수, 시기, 원한, 욕심과 같은 불행에 깜짝 놀란 판도라가 상자 뚜껑을 닫았을 때 그 상자 안에 남아 있던 단 하나 희망이라는 단어 하나 붙잡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이 한 생을 살아가는 데 희망처럼 희망찬 말은 없는 것이다.

희로애락 오욕칠정은 세상에서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난 우리가 피해 갈 수 없는 지난한 과정이다. 이 인생의 지난한 과정을 노래한 것이 인류가 이루어낸 음악과 미술 문학과 예술이다.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아포리즘' 서문에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기회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경험은 불확실하며, 판단은 어렵다.라고 말하며 판도라의 상자의 뚜껑을 연 세상의 혼돈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래도 여전히 판도라의 상자라고 하는 인간 세상에서 반드시 좋은 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부여잡고 우리는 하루하루 힘들지만 꾹 참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즉 단선적이고 직선적인 한 생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일시무시적 우주적 한 바퀴 원 가운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한 생이 티끌처럼 자리 잡고 있다는 유전정보적 감각이 우리를 희망으로 이끄는 나침판 같은 것 아닐까? 죽으면 끝이고 지금 우리가 누리고 보고 느끼는 것이 다라고 하는 단선적이고 직선적 사고야 말로 세상에 태어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갈고닦은 뇌정보적 감각으로 끝나는 더 이상 희망마저 판도라의 상자에서 사라지는 절망적 삶의 태도가 아닌가 우려된다.

한 동안 우리 사회에 널리 회자되었던 욜로족이라는 트렌드가 있었다. 'You Only Live Once'의 머릿글자를 딴 YOLO라는 말은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다. 생체는 리듬이다. 생명이 만든 인간이 만든 세상도 고정불변하는 유물론적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음악과 미술이 존재하고 문학과 예술이 살아 숨 쉬는 세상에서 흥망성쇠라고 하는 자연의 리듬이 살아 숨 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명이 요동치는 세상 한가운데서 한 번뿐인 인생에서 누릴 것은 철저히 누리자는 생각은 일견 합목적적 사고인 듯 보이지만 전제가 틀렸다. 의외로 인생은 짧지도 않고 한 번뿐이지도 않다. 한 생에서도 흥망성쇠라는 인생의 파도가 쳤다가 사라지고 왔다가 가는 것이며 그때마다 희망이라는 끈을 놓치면 우리는 짧다고 생각하는 한 생마저도 제대로 살아낼 수 없는 존재다.

이승이 있으면 저승도 있고 저승이 있으면 이승이 있듯이 우리는 자연에서 나와 세상을 살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 즉 끝이 없이 순환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끝없는 순환의 한 지점에서 절망을 느낄 때 오뚝이처럼 우리를 일으키게 하는 한 가지를 꼽으라면 모든 것이 빠져나간 판도라의 상자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던 한 가지, 희망이라는 단어이며 희망이 존재하는 한 끝났다고 착각해도 끝낼 수가 없는 희망의 애드블런을 오늘도 내일도 띄우며 희망찬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삶을 우리는 살아낼 수가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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