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불복(福不福)과 복불복(服不服)

by 윤해



2024.02.23

광인(狂人)과 정상인의 차이는 박자 차이라고 한다. 남이 웃을 때 울고 남이 울 때 웃으면 그 사람은 미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님의 침묵'이라는 시로 널리 알려진 만해 한용운의 복종(服從)이라는 시, "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는 3.1 독립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서 일제에 저항하여 3년간 옥고를 치른 독립지사이자 저항문학가로서 우리가 기억하는 만해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것 같다.

1879년 조선이라는 왕조국가에서 태어나 대한제국을 거치면서 나라가 멸망하고 일본제국주의가 욱일기를 앞세워 승승장구하던 시대상황에서 '조선불교 유신론'을 통해 불교를 개혁하고 망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만해에게 있어 복종하고자 했던 님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하다.

지구상의 여타 생명체와 다르게 여백의 뇌를 가지고 태어나는 우리 인간은 학습하는 뇌, 즉 후천적 뇌를 개발하면서 주변 환경을 인지하고 이용하면서 생존본능을 발동하여 인생에서 마주하는 갖가지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나름대로 찾아나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유복한 가정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고 시대마저도 평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성장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째지게 가난한 가정에서 오로지 인생역경대학이라고 하는 고통 속에서 시대상 마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오로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극악한 환경에서 성장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예능 프로에서 자주 등장하는 hit or miss라는 운과 복이 지배하는 복불복(福不福)의 영역일까? 아니면 극악한 시대 상황에 처한 만해 한용운이 그토록 찾아서 복종하고 싶어 했던 '님'으로 불리는 절대자의 침묵 속에서 느끼는 절망감을 '님의 침묵'을 통해 간구하고 '복종'을 통해 복불복(服不服) 한 것은 아닌지 막연히 상상해 본다.

복종(服從)에는 "같은 옷을 입는 무리가 서로 따른다"는 원뜻이 숨어 있다는 말과 같이 말과 글로 가상세계를 건설한 인간 세상에서 같은 옷을 입는 무리라는 개념은 그 어떤 결속보다도 강력하다. 하물며 우리 민족을 늘 백의민족이라 부르며 흰옷을 입는다는 자체를 민족과 동일시하는 것만 봐도 같은 옷을 입는다는 의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자연에서 태어나서 인간의 몸이라는 세상의 옷을 입고 자라서는 여백의 뇌를 차지하는 세상의 이념과 생각으로 생존투쟁을 하다가 서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이념공동체를 만들어 자연에서 나온 나가 나라를 만들며 서로 각축하는 인간이 만든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나라는 세상의 최소단위가 모여서 나라를 구성할 때 이미 나라라고 하는 세상의 옷을 나누어 입고 복종하며 살기로 약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온 나라는 인간은 나가 모여 만든 나라에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갑론을박 알쏭달쏭한 복마전을 시연하면서 복종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 나아가 나라의 힘을 빼고 와해시키며 나라 자체를 팔아먹는 매국의 행위로까지 발전하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종종 목격한다.

망국의 백성으로 나라라고 하는 님을 잃어버리고 님이 침묵하는 사이에 복종할 대상마저 사라졌을 때 비로소 복종이 무엇인가 깨달은 만해의 시에서, 억겁의 수많은 행운이 겹쳐 세상에 왔다는 복불복(福不福)의 존재로서 온 우리가 세상을 만나 나라는 개인이 만든 나라에 복종할지 말지의 자유가 복종이 아니라 방종으로 흐르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을 보면서 복불복(服不服)이 새삼 소환되는 것이 만해가 만난 망국의 상황과 비교해 볼 때 시의적절 할까? 혼자서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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