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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by 윤해



2024.01.29

희대의 배우 찰리 채플린이 말한 인생이다. 인생이 희극 같기도 하고 비극 같기도 하지만 한 생을 살아보면 희극과 비극이 희비쌍곡선을 그리며 예술을 하다가 인생이라는 말과 같이 사람이 살아만 있으면 비극으로 점철된 과거도 추억이라는 추진체를 달고 보이저 1호가 한점 지구를 멀리서 바라보듯이 바라보면 아름다운 희극으로 인생 전체가 그럴듯하게 마무리되는 것이다.

개별적 존재인 우리 인간이 세상을 만들어 서로 상부상존 하면서 오손도손 살기가 어려운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리라 짐작한다. 우리가 시절인연을 따라 함께 살고 있지만 개별적 존재로서 지구에 온 까닭으로 아무리 가족, 조직, 사회, 국가로 묶여 있지만 틈만 나면 이것으로부터 분리되고 싶은 원을 안고 사는 것이 세상 속의 인간이다.

세상밖의 개별적 존재로서의 사람을 세상 속의 관계적 존재로서의 인간으로 묶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사람의 욕망과 그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서 이념을 만들어 진영을 구축하고 진영의 이합집산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서너 바퀴 돌리는 예술을 하다 보면 내가 세상인지 세상이 나인지 세상과 인간이 물아일체의 경지로 빠지곤 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같은 폭력적이고 비극적인 상황을 마주한 개인의 인생이 파괴되는 메커니즘도 대략 이와 같다. 일단 그 비극적인 상황에 놓인 개인은 사유란 것을 할 수가 없고 사유가 없으니 판단을 못한다. 대부분의 개인은 얼어붙는다. 이 freezing 반응은 사고나 의지와는 무관한 교감신경계의 조절반응으로 생존의 위협이나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는 개체가 싸움과 도주 반응과 함께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반사반응이다.

6.25 한국전쟁 발발의 결정이 스탈린이라는 한 독재자가 내린 결정으로 보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원인이 농축되고 곪아서 터진 역사의 전환점이요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패권질서라는 장기판, 또는 바둑판 반상 위에 놓인 한반도는 하나의 장기말이요 바둑알에 불과했는지도 모르겠다.

성동격서의 대표적 사례로서 스탈린의 동부유럽 공산화를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김일성이라는 말을 시켜 기습남침을 하고 미군을 한반도에 개입하게 만들고 이것도 모자라 모택동까지도 스탈린의 장기판에 올려 장군을 부르고 미국의 멍군이 한반도에서 피의 능선을 사이에 두고 팔다리가 찢어나가고 산하가 피의 강으로 젖을 때 스탈린은 소련의 동구권 확보라는 전리품을 받아 들고 소련의 국익을 완수했다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자국의 이익을 도모한 한 독재자가 죽어야 끝낼 수 있었던 전쟁이 바로 우리 민족이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치를 뜨는 6.25 전쟁이었다.

피가 강을 이루고 살이 찢겨나가는 전쟁이 한반도에 종식된 지 70여 년이 흘렀지만 종전이 아닌 휴전의 대한민국이 치른 하얀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여전히 세계 패권전쟁은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팍스아메리카나로 정리되었고 새로운 도전자가 나타날 것이고 우리는 그 도전자로서 체급이 안되니 미국이 차려 놓은 반상의 장기말로 기능할 것이다. 장기말의 운명은 갈 수 있는 길로 최대한 빨리 가서 반상을 정리하여 더 이상 장기판이란 반상이 필요 없게 만드는 것이다. 세계패권 질서란 그레이트 게임은 장기판같이 그리 간단치 않다. 지정학적 위치 삼국지를 넘어 열국지들의 이합집산 그 속에서 일어나는 스파이들의 하얀 전쟁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는 곳이 이곳이다.

세계패권전쟁의 한가운데 놓인 개인으로서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휩쓸리지 않고 오로지 국익이라는 틀 안에서 고민하고 사유하는 판단을 가진 국민들이 모여사는 나라는 너와 나가 따로 없는 이념과 진영은 개나 줘버리고 훌훌 털고 일어나 단합되고 일관된 국익중심주의의 판단을 한다면 장기판의 말이 되어도 기어이 상부상존하고 오손도손한 개인의 행복도 굳건히 지킬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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