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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밍 신드롬, 패러다임의 전환과 메타인지

by 윤해


2024.01.28

말과 글로 세상을 밝히는 문명이라고 하는 현상은 필연적으로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실체적이고 구체적인 세계 이전에 상상하고 구상하는 추상적인 세계가 먼저 자리 잡는다.

우리 인간의 문명이 비약적인 도약과 성취를 동시에 달성한 가장 주요한 이유가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과정에서 단순히 생존 경쟁을 넘어선 한 무리의 인류가 밤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느냐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면서 광대무변한 우주에 대해 상상을 하고 구상을 하면서 자신과 자신의 무리를 확장하고 추상하는 인지혁명을 통한 메타인지까지 자신을 몰고 간 덕분이 아닐까?

농업혁명과 산업혁명 그리고 인공지능혁명까지 우리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실체에 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인류가 특별한 존재인 이유는 그 어떤 생명체도 도달하지 못한 인지혁명을 통해 문명을 만들고 이 문명을 가지고 주위환경에 대해 상상과 구상을 하고 마침내 상상하고 구상하는 것들을 구체화시키고 실현시키는 위대한 여정을 반복한 존재라는 것이다.

수십억 년 생명의 역사에 비추어 보면 수만 년에 불과한 인간의 역사는 어떤 한 시대 인간들의 사고가 견해가 되어 집단적인 인식체계로 자리 잡고 나아가 주위 환경이나 사물에 대해 규정하는 이론적인 틀로서 시대와 역사를 견인하며 우리는 이것을 한마디로 패러다임이라고 한다.

농업혁명을 통해 가축화에 성공한 우리 인류가 가축의 힘을 이용한 바퀴를 발명하고 바퀴가 수레에 달리고 수레가 객차나 화물칸이 되어 줄줄이 매달려 두줄로 나란히 놓인 궤도를 따라 증기기관차가 되는 산업혁명도 결국 구상이 실체가 되고 상상이 현실화되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통해 상상이 현실이 되고 꿈이 이루어지는 반복되는 문명의 빛을 따라온 우리 인류가 생명체로서 인지혁명을 통해 주위 환경과 사물을 바꾸어 놓는 것과 무생명체인 인공지능에게 우리의 인지를 학습시키는 딥러닝을 이용하여 기계적인 인공지능혁명을 꾀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 종말적 상황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수십억 년의 생명의 역사에서 문명을 통해 인지혁명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우리 인류에게 인공지능혁명은 인지혁명의 종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심각한 문제를 내포한다.

인류의 가장 독특하고도 고유한 능력, 즉 사고하는 능력이 사라지는 시작점이 인공지능 혁명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워낙 AI시대의 초입에 진입해 있으므로 신기해하고 경이로운 눈빛으로 인공지능을 바라보지만 인공지능 최대의 결함은 말 그대로 몸이 없고 머리만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돌려 말하자면 인공지능은 수십억 년 생명의 역사가 기록해 놓은 몸의 역사는 없고 수만 년 문명이 만들어낸 머리의 역사만 있다는 의미다. 이 불균형적이고 비대칭적인 인류의 선택은 상상과 추상으로 이루어진 인류의 인지혁명의 한계이며 새로운 패러다임의 한계이기도 하다.

나그네 쥐라고 불리는 레밍이라는 설치류는 선두에 있는 레밍이 길을 잘못 들어 절벽이나 바다로 뛰어들면 나머지 수많은 레밍들이 생각도 하지 않고 앞선 레밍을 따라 주저 없이 절벽이나 바다로 뛰어든다고 한다. 인지나 판단을 위탁하고 잃어버린 생명체를 기다리고 있는 곳은 예나 지금이나 절멸뿐이다.

수십억 년 생명의 역사가 만들어낸 경이로운 우리의 몸과 머리가 관계로서 연결되어 있고 이 연결된 관계하에서 우주에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를 찾아가는 지혜자로서 우리는 지금까지도 그러했겠지만 메타인지를 발휘하여 인공지능이라는 편익을 넘어서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통해 레밍신드롬을 잠재우는 우리 인류가 될 것이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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