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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릇은 무엇으로 만드는가

by 윤해



2024.01.27

세상에 태어나 인간으로 한평생 살다 보면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이 세상은 참으로 햇깔린다는 생각이다. 즉 환한 대명천지에도 해가 무엇인가에 깔려 있어 뭐가 뭔지 알 수 없도록 알쏭달쏭하며 아리송한 것이 세상만사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고 한 생의 한 바퀴를 무탈하게 돌리고 나면 과연 남는 것이 무엇일까?
영웅의 인생도 공과가 갈려 끊임없이 논란거리가 되는데 하물며 범부의 삶이야 오죽하겠나 그저 하루하루 무탈하고 변고 없이 살아내기만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삶이라고 치부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이 한 생명을 내어 놓을 때 그 생명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생존하라는 단 한 가지 당부일 것이다. 자연에서 나온 생명이 가족을 만나고 조직에 들어가고 세상에서 살아가다 보면 끊임없는 각각의 가치관에 따른 세뇌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겪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세뇌에 충실히 따라준 구성원에게 보상을 해주고 이 보상이 거듭되다 보면 조건 반사적으로 조직과 세상에 순응하고 조직과 세상이 정해준 경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충성하면서 개인의 활로와 함께 생존까지도 도모하려는 합목적적 결론에 도달한다.

이 순간이 자연의 생명으로서 한 생명이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천부의 그릇을 잃는 순간이다. 그렇게 잃어버린 그릇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세상과 조직이 명령하는 데로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하는 것이 생존의 지름길이며 한 세상을 멋지게 사는 유일한 길임을 믿어 의심치 않고 사는 것이 어쩌면 세상 안에 놓인 우리의 운명과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세상과 조직에 순응하면서 사는 시기가 인생 전반전의 삶이었다면 인생 후반전을 사는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천태만상의 세상과 인간의 모습이 다양하므로 뭐가 좋다 나쁘다를 정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그동안 세상과 조직 속에 살면서 가지고 있었던 습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평생을 가지고 살았던 습관이나 가치관을 내려놓는 일이 어렵겠지만 자연이 우리를 세상에 내어놓을 때 자연으로부터 받은 시절인연이 있고 그 인연에 따라 본인의 그릇이 정해져 있으며 그 그릇대로 여생을 보내야만 그릇되지 않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생명에게 부여된 운명과 숙명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가 생명으로서 지구에 왔고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내가 누구이며 나는 어떤 그릇인가를 알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타인의 그릇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는 나의 그릇대로 살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다 보면 그동안 살기 위해 세상이나 조직에 집착했던 습이 떨어져 나가면서 온전한 자기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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